그동안 글 쓸 엄두도 못내고 바쁘게 살다가, MBC 파업과 제 근황을 함께 써내려가봤습니다. 마지막 경험담은 예전에 김진혁PD님 블로그 에 댓글로 단 내용이기도 합니다^-^
MBC 파업, 신념을 위한 시간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난, 서점의 <처세>, <경영>, <성공> 등등의 팻말이 걸린 판매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도 이런 류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러다가 이런 류의 책들이 왜 잘 팔리는지를 알게된 것은 역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을 먼저 해 본 이들은 말했다. 만액에 니 잘못이라고 널 탓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억울한 경우가 생기겠지? 그래도 웬만하면 그냥 변명하지 말고 죄송하다고 하고 참는게 나아. 직장 동료들에게는 네 속마음을 100% 털어놓지 말고. 결국엔 회사 다닌다는 거는 돈 받고 종살이(!)를 하는 건데 말이지......
물론 회사라는 공간이 내가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별천지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한국인들이 일하는 곳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태도나 말투가 어떻건, 중요한 것은 모두들 웃으면서 지내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자신의 사생활에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가 아파서 반차를 쓰고 병원에 데려가기도 하고, 남편이나 아내가 어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더라 정도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현재 나의 가족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왜 자녀때문에 내 속을 썩는지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정치 얘기라든가 종교 얘기같은 건 아예 잘 꺼내지를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너무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될 만한 꺼리는 애당초 내보이지를 않는다고나 할까. 이런 환경에서 나는 일주일에 4일 이상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을 상대하면서 돈 앞에 부모고 자식이고 없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는 사실들을 날마다 반복해서 겪으며, 나는 '더' 변하기 시작했다. 공지영 작가가 괜히 "작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돈을 벌어봐야 한다." 고 권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지 내가 사무실에 매여있고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입사하기 전 가지고 있던 꿈, 계획, 취미 등을 '포기한다' 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것을을 잃어버리고서 밤낮으로 일만 하는 나날이 반복되자,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고, 누구보다도 한국의 학교와 교육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언젠가는 조나단 라슨의 공연에 대해 제대로 리뷰를 쓰겠다는 꿈들은 잊어버린채 그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일은 어떻게 하지,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유있고 행복해보이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일쑤였다. 이렇게 내가 개인적인 고민과 피로 속에 찌들어 살아갈 때, 시국은 계속해서 변하고 큰 사건들이 흘러갔다. 용산 참사 도, 4대강 사업(?)도, 천안함 침몰 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사건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처지의 나로서는 그저 '나는 대선에서 투표 제대로 했는데...' 라며 씁쓸해 하는 것이 전부였다. 꿈도 없고 목표도 잃고 그냥 방황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던 나를 붙잡아 돌려세운 것이 바로 MBC 파업이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메이저 언론에서는 MBC 파업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적극적으로 기사를 검색하거나 자료를 찾아보지 않는 한 이 파업의 실상을 알 기는 어렵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 '나도 잘 모르는데' 하는 분들은 이 기사 (텐아시아, "그들은 왜 MBC를 멈췄나." 를 읽으시기 바란다.) 그러나 막연하게 응원해야지, 라고 생각한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이근행 위원장의 인터뷰 중 한 구절이었다. 단식을 12일째 하다 결국 병원으로 이송되신 이 분이, 그 전에는 구태의연해보인다며 싫어했다던 '단식투쟁' 을 왜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던 순간이었다.
"위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또는 내가 언론 노동자로서 지금 내가 제기하는 문제를 과연 어느 선에서 포기할 수 있는 문제인가...."
<2010.05.06 MBC 파업뉴스데스크 2탄, 이근행 위원장 인터뷰 중에서 (동영상 4분 40초 이후)>
그랬다. 수많은 직장인들과 사회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꺾고, 원칙을 어기고, 다른 이에게 '지면서' 살아간다. 갈등을 피하기 위헤 웬만하면 물 흐르듯 살아가고 싶어하고, 고지식해보이지 않으려 애쓰는게 돈 버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이 정도의 생각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하거나 고용을 위협받을 때 나오는 게 '노조' 이고 '인권' 이며 '투쟁'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근행 위원장은 '무노동 무임금' 도 감수하는 걸 넘어서서, 일자리를 잃는 것 이상을 감수하면서도 '신념' 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힘내라!MBC (http://cafe.daum.net/saveourmbc)
물론 MBC를 포함한 언론노조, 방송사와 신문사는 한국 사회에서 '있어보이는' 직장인들에 속하며, 지금 이시간에도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으며, 그 곳이 더 절박할 수 있다. (그리고 MBC 파업이 '임금 인상' 으로목표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하여 더 자부심을 가져오는 것은, 자칫하면 '임금 인상'을 위해 애쓰는 여타 노조의 활동이 이기적이라거나 저차원적으로 매도당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리고 주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MBC 파업, 그리고 그에 앞서 있었던 YTN파업이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이 '신념' 때문이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대로만 하고 살면 정년퇴직이 보장될 수 있고, 동료들끼리의 갈등도 웬만하면 피하고 봐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데 MBC노조는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수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지난 2008년 12월 - 미디어법 통과 저지를 막기 위한 파업 당시, 신촌에서 만난 MBC노조원 한 분과의 일이 기억났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거리를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고, 미디어법은 '악법'이기에 그를 막고자 파업한다는 전단지를 누구나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길거리의 미용실 찌라시나 다른 광고지보다는 인기가 많아 다행이었다.). 내가 지나가자 역시 그 노조원은 "MBC에서 나왔습니다.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내게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인쇄된 종이를 받아들면서 말을 건넸다.
"MBC 스탭이세요?"
"네, MBC 직원입니다."
"어휴, 고생하시는데 이렇게 날씨가 추워서 어떡하나요...."
"괜찮습니다.":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던 그 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요."
"네."
"....지셔도 돼요."
".......하하하!!! (기막힌 너털웃음)"
"사실 저는 그렇게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는 못하겠거든요. 그래서 지셔도 되는데.....YTN만큼만 해주세요."
굳이 더 자세히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다.
"네, 저희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MBC 직원 분은 담담하게 미소지으면서, 하지만 자신있게 말했다.
지난 대선 이후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다. 사회의 원칙이 뭔가 너무나 크게' 틀려진' 것 같았고, 지금처럼 이렇게 되리라고 대충이라도 예상한 사람들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같은 시민들에게 위안을 준 사람들이 다름아닌 YTN과 MBC등의 언론 운동이었다. 저렇게 옳은 신념을 위해 무모하리만치 용기있게 나서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는구나,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래서 아무리 촛불의 광장을 벗어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했어도, 그래도 희망이 있구나 라고 되뇌일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관심 갖는 사람보다 무관심한 사람들, 내 일과 상관없는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한참 더 많은 것 같아서 허탈하지만, 그리고 '승리' 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지느냐' 역시 중요할 것이다. 질 때 지더라도 멋있게 지면, 다시 시작할 여지가 있으니 희망적이지 않을까.
"작게는 집행부,
크게는 우리 MBC 구성원들이 함께 해 왔기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인생의
보람된 한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업에 임한 모두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 시기는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싸움에서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떻겠나. 자기 스스로 떳떳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면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굴종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시기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언론운동이라는
게 하나의 작은 영역이지만 MBC 역사와 언론의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본다.
"
(텐아시아 - 10 FOCUS, "정권은 선거 끝날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거다" 이근행위원장 인터뷰 중에서)
나도, 모두, 함께, 응원할 것이다.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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