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글을 쓸 짬이 없어서 블로그 업데이트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동안의 소회를 잠깐이나마 정리해보았습니다.
회사원이다
어느덧 회사원이 된 지도 세 계절째다.
작은 블로그를 열어놓고 사회가 어떻네 학교가 어떻네 하고 글을 써왔지만, 부정할 수 없던 사실은 나 또한 취업에 나서야 하는 88만원 세대라는 점이었다. 몇 년 동안 공부를 하며 시험 준비를 했던 나도, 결국 집안 사정과 다른 여러가지 이유들로 회사에 취업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자소서를 쓰고 접수하고 탈락하는 과정을 줄창 반복하다가, 다행스럽게도 올 하반기 대기업 공채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즈음에 작은 회사의 신입사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은, 당연히 많은 것이 변했다.
기계
시험 공부를 하다 취업으로 전환을 했으니, 나는 대졸 신입사원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았고 특히 여자 신입 중에서는 제일 언니였다. 그래서 '나이' 에 대한 걱정이 상당했다. 여기는 한 살 차이에도 존대말과 반말이 갈리는 대한민국 아닌가. 다행히 다 같은 '대졸신입'으로 분류되기에 나이에 대한 퉁박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어딜 가나 사회초년생의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 틀을 통해 비로소 '회사'라는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기 시작한 직후 가장 크게 다가온 자괴감은 '기계가 되었다' 는 것이었다. 물론 출퇴근을 반복하며 밥벌이 하는 사람들의 일상 중에 기계적이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마는, 업무 특성상 정말 모니터만 바라보는 데스크잡 기계처럼 느껴지는 일이기는 하다 (이는 내가 별 말도 하기 전에, 일을 시키는 상사들이 먼저 선수를 쳐서 말하기도 했다.). 나는 혹시나 이 글을 읽을 학생이나 다른 십대들에게 사회생활이 어떻네 하면서 훈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만약 몇 달 전의 나처럼 '취직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는 절박함에 그 뒷 일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직장에 들어가고서 그 이후에 대한 고민을 그동안 별로 하지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싶다. 다들 88만원세대, 청년 실업, 취업률만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더 '그러니까 더더욱 취직해야 한다' 고만 생각했지,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대처할 각오(!)를 했는가는 한 번 정도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장도, 과장도, 신입사원도 결국에는 기계같이 일을 하고 그게 월급을 받는 사람들의 일상이니까. 많이들 환절기 감기에 걸리지만, 아프다고 해서 멋대로 휴가를 쓸 수도 없다. 한 두 마디씩 "괜찮아요?" 라고 걱정해줘도, 나의 업무를 다른 사람이 자진해서 해 주겠다고 하는 경우는 없다. 몸이 아픈 학생과, 몸이 아픈 회사원의 차이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바로 '회사형 인간' 들이었다. 나도 지금은 칼퇴근은 커녕 일주일에 4일 이상 야근을 하곤 한다. 알고 보니 이렇게 빨리 사람을 뽑은 건, 늘어난 업무량에 비해 기존 사원들이 많이 퇴사해서 일손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졌고, 이러다보니 신입직원교육도 체계적이기 보다는 일단 일을 시키면서 그 때 그때 설명 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업무 시간내에 모두 일을 마치고 저녁을 집에 가서 먹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야근이 정말 많았다, 아니, 정말 많다. 이건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문제 - 힘들긴 정말 힘들다 - 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나를 비롯한 비혼 사원들은 그렇다 치지만,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회사원들이 몇 날 며칠을 야근을 하는 상황이 옳게 보여지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 회사는 야근수당이 나오고, 이렇게 야근을 반복하는 일이 긴 기간으로 놓고 보면 일시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당신이 다니는) A사에서는 야근수당이 나와요?" 라는 타사 직원의 말까지 들으니, 이건 어느 회사의 특정한 상황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빠나 엄마가 출근하기 위해 아침 8시 이전에 나와서, 밤 11시 넘어서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되는데 그 집안이 '화목할 시간' 이 있느냐는 말이다. 심지어 난 대학원생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회사들이 칼퇴근만 가능해도, 가정에서 소외된 비행청소년이 반은 넘게 줄어들거다."
임산부 여직원은 물론이고, 아이를 낳은 엄마 직원도 가정과 양립을 하려면 다음 3가지의 경우 중 하나였다. 친정어머니가 집에 상주하며 아이를 돌본다/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종일 고용한다/ 종일 어린이집에 보낸다. 누구는 "한 여자가 성공하려면, 다른 한 여자가 희생해야 한다." 고도 말했다. 회사 내에서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이 없다고 쳐도, 비단 여성 뿐 아니라 부모 모두가 자녀를 챙길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한 채 '가족의 소중함' 만을 외쳐대는 매스컴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
하긴, 이건 지금의 내 문제는 아닐 지 모른다. 기계라는 자괴감에서 비켜나자 좌절감도 찾아왔다. 이 취업난에 취직되었다고 주위에서 축하도 많이 했지만, 원하던 진로도 아니었던데다 '실패한 고시생 출신' 이라는 쓸쓸함 -왜냐하면, 나는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교육과 학교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어했으므로 - 은 오히려 회사 밖,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찾아왔다. 몰론 단단히 결심했었다. 사회적으로 유세 떠는 직업군에 속하지 못했다고 하여 남들이 뭐라 비하해도 좌절하지 말기 (혹자는 내게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 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유사한 경험이 있어서 이런 위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더 많이 사유하고 더 많은 감성을 간직하고 표현하기, 돈과 명예 이전에 내 스스로의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기.....그런 생각들을 곱씹으며 마음을 다잡고 살다보니 이젠, 야근이 더 많은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취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와 통화하면서 나는 "임금의 반대급부는 노동력이 아니야. 몸 아픈것, 위 아래 사람 눈치보는 것, 기계같이 일하는 것, 처세하는 것.....그 모든 걸 버티는 댓가가 바로 월급인거야." 라고 한탄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나" 만 있게되고, 다른 부분의 나는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밥먹듯이 야근을 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고, 다시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만원 지하철에 타는 일상이 반복되자, 취업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나라는 사람의 '여가'는 거의 불가능했다. 사놓고는 읽지도 못하고 있는 책만 10권이 넘고, 자리에 않아 글을 쓰는 건 이런 3일 연휴 (2009.12.25~27) 가 아니면 불가능했다(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야근하고 집에 가니 11시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심야 토론 프로를 일일이 챙겨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취업 하루 전 먼저 연습장에 개요를 적어둔 <태희혜교지현이>의 리뷰도 포기해야 했다. 혹시나 기대하신 분이 있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사회에 관심없는 20대, 사회에 관심없는 기성세대....개인의 문제도 물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한 표의 가치'는 온전히 발현되기 힘들 것이다.
왜 공지영 작가가 "작가가 되고 싶다면 먼저 돈을 벌어봐야 한다." 고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살기 위해, 그 "돈"이라는 걸 얻기 위해서 일생에 어느 것을 포기하게 되는지, 생계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들이 어떻게 되는지 이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내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내 인생의 꿈이 뭔지 되돌아보기도 전에 하루는 쉴틈없이 흘러가버리곤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있는 한 언니는 내게 말했다. "다정, 취업 걱정에 한숨 쉬고 그랬는데, 그럼 회사 들어가고 난 지금은 어때? 막상 취직을 했어도 여전히 앞날이 불투명하게 느껴지고 그러지? 맞아. 직장 다니면 자기 시간이 없지. 돈이냐, 시간이냐 둘 중 하나야. 돈을 벌려면 자기 시간이 죄다 없어지고, 또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으니." 맞다.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올해 나는 진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한숨짓고, 울었다. 이 블로그에 몇 번 방문한 사람이라면, 내가 사회에도 관심이 많고, 아마추어로나마 공연 작품 리뷰도 정성들여 쓰곤 했다는 걸 아실 것이다. 그리고 이젠, 다시 그런 나를 찾고 싶다. (교육 문제에 대한 나의 진로 변경에 실망한 분이 혹시 있다면, 민간인 자격에서 작게나마라도 후원할 길을 모색하고 실천할 것을 약속드리고 싶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하엘 엔데는 모모를 탄생시켰다. 나도 그처럼, 나의 인생을 스스로 성찰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일상을 조금이라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일도, 출근이다.
이 글의 저작권은 다정스페이스에 있으며,
다른 사이트로 퍼가거나 기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