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아이돌, 그리고 이십대 (2)

| 2009/03/23 20:54 | 다정
 
(1)편에 이어서, 어릴 때 이야기 하나 더 해볼까? 어느 날 우리 반 친구들이 사진 한 장을 구경하겠다고 우르르 모여들었던 적 있었어. 우리 반 아이 중 한 명의 친척이 방송국 스탭이었는데, 그 덕에 친구들 몇몇이 한 가요프로그램 출연진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었던거야. 그래서 그 날 출연하는 모 그룹 멤버들과 찍은 기념 사진을 학교에 가져오고, 그걸 다들 보겠다고 난리였던거지. 나도 "우와! 너네 되게 좋았겠다!" 라고 '선택받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마침내 그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우리 반 여학생 다섯 명과, 아이돌 그룹 멤버 중 세 명이 나온 거였거든? 그런데 앞 줄에 앉아 환하게 V자를 그리며 웃는 팬들과 달리, 뒷 줄에 나란히 선 그 세 사람의 표정은....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해 보였어. 심지어 카메라도 보지 않고 모두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고 있었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자이로드롭을 한 다섯 번 쯤 탄 뒤 탈진한 사람이 지을 법한 그런 진저리나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단다 (혹시 그런 심드렁한 표정을 '설정'으로 하고 찍은 거 아니냐고? 전혀 아니었어.).
만약 너나, 아니면 지금 활동하는 후배 아이돌 가수나 연예인들이라도 그 사진을 보게 된다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렇지, 팬과 같이 사진을 찍는 거면 그 잠깐만이라도 웃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할 지 몰라. 그런데 그 사진을 본 순간, 그 세 사람이 '싸가지 없다(!)' 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진 한 장도 찍기 괴로울까' 싶었어. 그들은 다시 누군가가 그 정도의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스타들이었어. 그런데 너무 인기가 많았던 나머지, 누구누구의 아는 사람이라고 연줄이 닿는 팬들이 죄다 대기실까지 몰려들곤 했다는 거야. 그 중에 우리 반 애들도 있었던거고. 잠깐이나마 편하게 쉴 틈도 없이 시달린 나머지, 결국 그들은 대기실에 팬들이 들어오게 못하도록 방송국 측에 출입금지까지 부탁했다고 해.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대가 그대를 사랑하기
-십대, 아이돌, 그리고 이십대 (2) -





앞 글에서 읽었던 거 기억나니? 누나가 신이나 다른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니 그 이유를 정확히 댈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잖아. 외모도, 재능도, 사는 환경도 모두 다르지.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선망하는 이미지, 우선시 되는 가치관들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거나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애당초 말도 안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어떤 연예인이 예쁘고 멋져보여도 그와 똑같이 될 수는 없을테니까.


그러니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자존감' 이라는 거야. 1등? 그래,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그 1등, 수석, 천재 등등의 말에 사실 모두들 괴롭지. 하지만 1등을 정하는 기준도 죄다 제각각이고, 그 1등들 중에 또 1등을 추려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건 선재 너도 잘 알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그 어떤 1등도 영원할 수는 없으니까. 자기 분야에서 1등을 해본다는 게 살아가면서 추억이 되고 쏠쏠한 경력이 될 수는 있지만, 그저 상대 평가로 1등을 했다고 해서 그게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는 없는거야. 그러니 우리는 NO.1 으로 살고 싶어, 라고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를 Only One 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1등도 아니고, 돈을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난 내 인생을 사는 게 즐거워.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해, 나는 하찮지 않고 내 인생을 의미있게 생각해.....라고 하는 게 바로, 자존감 이라고 하는 거지. 이건 '타고난 너' 와 '이루어가는 너' 가 합쳐진 문제야. 그리고 누나가 이렇게 생각하게 해 준 건, 바로 1위라는 게 수시로 바뀌고 십년 전의 최고 인기가수가 더 이상 1위를 할 수 없는 현실이 냉혹하게 펼쳐진, 수많은 가요 차트였단다. 가수이건, 배우이건 대중 매체에 수시로 나와서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연예인들의 일은 그래서 힘든 거야. 물론 그들은 단시간에 비교적 적은 노동을 하고도 많은 돈을 번다는 점에서 다들 부러워하지. 그렇지만 이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대중에 어필해야 할 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단다.  이런 건 그저 기획사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자기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기도 하는 건 둘째 칠 수 있는 문제더라도. 그렇게 십년, 이십년이 넘어가는 시간동안 꾸준히 가수로, 배우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1위를 거듭하고 돈을 쓸어담은 사람들이 아니라, 비록 폭발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한 이들이란다.


자존감, 안녕?


내신과 수능에 매여 있는 너와 다르게 지금 성공했다는 연예인들, 아이돌들은 다들 너무 잘 나가는 거 같아? 세상은 이래서 불공평한거고? 하지만 선재야, 누나도 너와 만만찮게 그들을 부러워하고 선망했었는데 - 지금은 좀 달라. 물론 여전히 TV에 나오는 많은 연예인들은 참 예쁘고 잘 생겼고 게다가 질투심이 날 정도의 끼들도 많아. 하지만, 이젠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다르고, 각자의 전성기도 모두 다르다' 는 걸 깨달았어. 그러니까 네 나이에 전국 방방곡곡, 아니 이젠 적어도 아시아 전역에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리고 스타덤에 오르는 연예인들은 지금이 전성기인거고, 평범한 학생인 너나, 일반인인 나나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냥 '지금이 내 삶의 피크는 아닌가보다' 하고 생각하면 그만인거야. 실제로도 그렇고. 기억나지?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인생에서 적게 얻고 적게 잃는다면, 연예인들이나 다른 유명인사들은 많이 얻는 대신, 많이 잃는거라고, 우리의 삶을 일률적인 잣대로 결정짓지 말자. 그건 시험지 채점할 때나 하는 일이야.

그래도 네 스스로가 심드렁해져? 너는 딱히 어딘가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지도 못했고, 그냥 백사장에 널린 다 그렇고 그런 모래알갱이 같게만 느껴져? 그래, 그래서 진작에 어떤 사람은 십대들이, 그리고 다른 어른들도 내심 스타 연예인들을 선망하는 이유로 단지 '학벌이나 가진 재산에 관계 없이 큰 돈을 벌며 살 수 있어서' 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구' 를 채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어. 지금 '뜬' 아이돌스타들은 이런 꿈을 위해 몇천대 일의 오디션을 뚫고 긴 연습생 생활을 겪어낸 거니까, 이건 단순히 소망이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를 뒷받침하는 능력을 얼마나 타고 나서 어떻게 갈고 닦느냐의 문제겠지.
넌 꿈이 없어? 앞으로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할 지도 모르겠고? 선재야, 그런데....괜찮아. 정말 괜찮아. 네 삶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아. 왜냐하면 너는 지금 '살고' 있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학교에 가든, 친구들과 운동장으로 달려가 축구를 하든 설령 교실에 붙들려 야자를 하든 네 하루하루의 일상은 충분히 의미있기 때문이야. 너는 늘 무언가를 하면서, 즉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아가고 있거든.


이렇게 말을 하니, 혹 네가 "나도 이제 고3 되는 게 순식간일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정 누나는 그런 말 하면 안되는 거 아냐? 스스로가 겪어봐서 힘든 걸 안다면서!" 라고 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선재야, 내 말은 우리가 당하는 수많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을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까." 라면서 바보같이 감수하자는 게 아니야. 한국이 아니라면, 이렇게 수많은 십대들이 이렇게까지 '미래' 를 위해 현재를 '희생' 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잘 알아. 내가 지금 말 하는 건,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인생에서 겪게 되는 각자의 슬럼프나 고난, 불행을 다 뭉뚱그린 것들이야. 어느 사회를 가든 사람의 삶에는 기복이 있잖아. 살아가고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네가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키워진다는 거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네가 느끼지 못하고 그냥 '대충 산다' 싶을지라도 이미 넌 하루하루 인생을 배워가며 살아왔어. 잠자고 일어나고 학교에 가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놀고....너는 늘 무언가를 하면서, 즉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아가고 있거든.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야. 그걸 깨닫고 사느냐, 그냥 모른 채 오늘도 주어진 스물네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다,의 차이일 뿐이야. 그러니 수능 시험에 매여 사는 수험생들 뿐 아니라, 더 일찍 취업해서 사회로 나가는 실업계 학생들 모두에게 해당되는거지.


네게 주고 싶은 두 가지


누나가 굳이 네게, 그리고 아이돌과 연예계를 선망하는 네 또래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충고는 이거야. 어떤 가수건, 배우건 간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소위 말하는 '팬질' 을 하는 건 전혀 한심한 일이 아니야. 네 또래들이 아무리 어느 그룹의 어느 멤버가 제일 예쁘다고 헤벌쭉한 표정으로 감탄을 해도, 네 MP3 플레이어에 그 가수 말고도 많은 노래들이 저장되어 있고 내가 모르는 다른 것들까지도 많이 알고 있는 걸 알아. 그리고 충분히 '뮤지션' 라고 박수쳐 줄 만 한 아이돌 가수들도 꽤 되지 않나? 이젠 립싱크도 안 통하고, 한국에서 뜨면 최소한 아시아 지역에서도 동반 스타덤에 오르는 판에 '실력 없다'는 말은 아이돌 가수에게 가해지는 가장 가혹한 비판이 되기도 하는걸.
다만, 네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 사람보다 네 인생에서 더 중요한 존재는 바로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너 스스로' 라는 거야. 이건 팬질 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잊은 채 그저 미디어와 연예인에만 열광하지 말거라. 여자친구를 사귈 때에도, 네 여자친구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연애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너' 스스로의 존재야. 네 자신을 자주 돌아봐. 하루하루 잘 시간도 부족한 채 입시에 쫓기는 네 또래들 처지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쉽지 않을거야. 정 안된다면,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나다, 라는 생각이라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래. 이건 이기주의가 아니라, 네 자존감에 대한 문제니까. 처음에 '사생팬' 이 뭔가 했는데, 그렇게 연예인의 기본적인 사생활까지 모두 쫓아다니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그런 팬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토킹을?)이 한 편으로 안타까운 이유는 그래서야. 어쨌든 '나'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서, 정작 그 '나'로부터는 도망치고 싶어하고 자꾸 누군가,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것 같아보이거든. 실제로 그런 이들 몇몇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더 안쓰러워지기도 하고.


그리고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고 즐거워하는 네 스스로를 어떻게든 기록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표현을 해 봐. 뭔가를 표현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건 아니야. 누나처럼 틈틈이 글을 쓰든, 아니면 몇 줄의 일기를 쓰든, 연습장에 틈틈이 일러스트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든 기타를 잡든.... 소위 말하는 '문화'적이면서도 뭔가를 네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조하는 그런 취미를 가지면 어떨까 해. 전문가보다 못해도 좋아. 아니, 이건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문제가 전혀 아니야. 세상에 너는 하나 뿐이고, 그런 네가 느끼는 생각도 결국 남들과는 다 다르고, 그를 표현하는 것도 오직 너만의 것이란다.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수많은 공산품들과 달리 네가 그린 그림, 네가 쓴 글, 네가 부른 노래는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이니까. 그렇게 내 느낌을 뭘로든 기록하고, 표현하다보면 네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해지는가가 차츰 보이기 시작하거든. 그리고 내가 그저 문화의 소비자라는 것에서 나아가 무언가를 스스로 창조해 본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란다.

 
사실, 두 번째 충고는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해. 전에 잠깐 이야기 한 적 있었지만, 누난 글을 쓰고 싶다는생각을 가진 후에 뭔가를 쓴 게 아니라 그 반대였어. 그냥 재미있어서 쓰기만 한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걸 보고나서야 그 때부터 진지하게, 잘 하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그 때부터 후회가 마구 마구 밀려오는거야. 왜 고등학교 때까지 그저 언어영역 문제집만 들입다 풀었지, '문학소녀' 는 되지 못했을까. 왜 내 주위에는 작가건, 저널리스트건, 문학평론가건 기자건 뭐 이렇게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어른들이 없었을까, 이미 십대 시절부터 청소년 문학상 같은 거 타면서 일찌감치 솜씨를 갈고 닦은 사람들도 수두룩할텐데, 난 '또' 뒤처지는구나, 하고. 이날 이때껏 그저 미지근한 삶을 살아왔으니 상상력 같은 것도 많을 리 없고 (사실, 이 때가 누나가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이었거든. 인생 전체로 볼 때 전혀 늦지 않고 오히려 이른 시기인데.....). 만약 우리 부모님이나 다른 친척이 작가나 기자였다면, 현실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어도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험을 부러워했을테고, 또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좀 더 길게 보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때는 그랬던 거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내가 아무리 글을 못 썼더라도 - 그래도 성의 없이 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정말이야 - 일단 내 글은 나만의 것이고, 희한하게도 같은 언어와 글자를 사용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글들은 모두 다 다르더라고. 그리고.....예전에는 도통 쓸 거리가 없어서 난처했는데, 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노트에 빼곡히 적힌 메모들을 지금 글로 써서 올릴까, 아껴둘까 라는 망설임도 하게 됐어. 남들과 비교하고 등수 매기는 게 아니라 일단 즐기면서 그냥 즐겁게, 하지만 진지하게 하다 보니 이 정도로 성장한거지. 물론 이렇게 수다 떨듯이 적어내려간 편지글이 대단한 문학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여러가지로 갈 길이 멀지만.....누나는 인생을 살면서 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을 얻은 것 같아. 그래서 누나 친구도 "그런 게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추스리기 힘들어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싸움박질을 하는데, 너는 진짜 일찌감치 복 받은 거야. (계속 병원을 다니던 내게) 그러니까 야, 넌 좀 아파도 돼. 그래야지 남들이랑 좀 공평하지! (물론 웃으면서 한 농담이었어)" 말했던거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그리 잘난 사람이 못 되어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스펙'들 중에 들어맞는 것보다 들어맞지 않는 게 더 많을 지 몰라도, 사는 게 힘겨워도..... 느끼고,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는 건 내 인생에서 작은 시작이었지만, 큰 기적이고 위안이 되기도 했어. 그래서 감사하단다. "글을 쓰면 나의 상념, 이상, 꿈 등 모든 걸 새롭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라고 일기에 적었던 안네 프랑크의 마음은 아마 누나 뿐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거야. 그러다보니 이러 저러했던 어릴 때의 사소한 경험들도 모두 이야깃거리가 되던데? '평범함' 이란 말은 애초에 모순이었어. 세상에 똑같은 인생이란 하나도 없었으니까.


누나는 선재 너도, 네 또래 아이들도 일상의 추억을 기억하고, 즐겁게 무언가를 하면서 스스로 기쁨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게 설령 지금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분명한 건 넌 '살고' 있고, 그것 만으로도 참 기특하다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것은 내가 소중하다는 걸 너 스스로에게 '확인' 하는 것이지, 네가 대단한 예술가나 사회적인 명성을 얻어야만 쓸모있는 존재가 아니란다. 이미 많이 들어본 말이겠지만, 모든 직업은 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위해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단,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이럴 여건이 안되는 분들을 우리가 능력이 되는 한 조금씩이라도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고, 그리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 문제들에도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거지.


길게 보고, 오늘을 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든 날이 있었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해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 왜 내가 이런 슬픈 일들을 직접 겪어야 하나요?' 그러면, 아마 누나의 고 3때 담임선생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잖니, 다정. 직접 겪고 느끼는 것과 그저 남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듣는 건 무척 차이가 크니까 말이야." 라고.
우리 선재나 다른 동생들은 남들보단 좀 덜 험하게.....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하는, 좀 이기적일 수도 있는 소망도 생기지만, 설령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너희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겪은 모든 경험과 느낌들은 그 자체로도 쓸모없이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어떻게든 쓰이면서 각자의 삶에 도움이 될거야.
이건 너희같은 평범한 학생들, 그리고 그 못지 않게 성실하게 팬질을 하는 내 또래 친구들 (하하, 누나(?)들이야 ^^;;) 말고도, 지금 활동하는 연예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 주고 싶은 말이었어. 아까 너에게는 그저 너를 표현하는 취미로서의 문화생활을 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차원이 다르지. 미디어에 나타나는 나의 이미지와 실제 나의 괴리감,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대중에 어필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룹 내의 다른 멤버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데 어쩌지, 대형 기획사 입장에서 연습생 트레이닝 투자 대비 본전을 뽑다으려보니 나는 막상 연예인으로 데뷔했어도 많은 돈을 번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인기를 유지해서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불안 (없으면 말고!).....앞에서 썼듯이, '연예인'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그 자체가 직업이 되니까. (그래서, 만약 너나 다른 동생들이 "나 연예인 하고 싶어!" 라고 할 때, 아무리 끼가 많고 인기가 폭발할 거 같아도 쉽게 그러려무나,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괜찮아요. 당신이 경험한 것들은 모두 과거에만 그치지 않고 앞으로를 살아가는 힘이 되게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그리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아티스트들은 모두 멋지고 고마운 법이랍니다, 라고.



서점에 가득 쌓인 처세술, 자기계발서 책들은 이렇게 살아라, 지금 사는 방식을 다르게 뜯어고치라고 수많은 충고들을 해대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이미 꽤 괜찮게 살아오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가 뒤늦게 자신의 인생이 좋았다고 깨닫는 경우도 많더라.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정말 무기력해, 다들 자기밖에 몰라, 무관심해라고 투덜대기보다는 "괜찮아요, 당신은 이미 멋지거든요." 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던데? 사실이 그렇잖아! '그래서' 이 정도로까지 잘 살아오기도 했지만, '그렇지만' 이렇게 잘 커서 어른이 되었거나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걸.
선재야, 너와 네 친구들은 지금 충분히 착하고, 똑똑해. 그러니 '비교'라는 건 누가 잘하고 누가 못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인지 이해하기 위해 하자. 그리고 "괜찮아." 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자. 인생을 길게 보고, 오늘을 살자. 내가 바로 지금의 네 나이였을 때, 담임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을 이제 네게도 전해줄께. "우리 서로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정도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꾸나."

건강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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