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는 공연이고 영화고 제대로 볼 여유조차 없었던 둡....ㅠ_ㅠ. 그나마 크리스마스에 겨우 볼 수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 리뷰를 조근조근 써봤습니다. 지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리뷰와 마찬가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곁들여 언급하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Enjoy.
어린이와 어른이 사는 세상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 Ponyo on the Cliff By the Sea> 리뷰-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 Ponyo on the Cliff By the Sea> 리뷰-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직설적으로 "전쟁 반대, 평화 실현!" 을 외쳤던 정치적인 작품은 바로 이 직전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아예 유아용(?)으로 작정하고 만든 듯한 차기작이 바로 이 <벼랑 위의 포뇨>죠. 이미 많은 관객들이 말했다시피, 뚜껑을 열어 본 <벼랑 위의 포뇨> 안에 뭔가 엄청난 메시지 같은 게 숨겨져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주로 어린 관객들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고 만든 듯 했던 <이웃의 토토로(1988)> 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같은 작품 보다 더 단순하게 정리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닷가 마을을 만날 수 있었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간결한 플롯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호모 폴리티쿠스' 의 본질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요. 오히려 제 눈에 들어온 것은 꼬맹이 소스케와 포뇨 못지 않게,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분명히 초등학교도 아직 입학하지 않은 어린이들의 이야기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지 조와 스즈키 토시오 등의 모든 제작자들은 진작에 어른이 되고도 남았던 이야기꾼들입니다. 아이들의 세계에 이 어른들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요?
마법? 그렇구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꼭 한 사람씩은 등장하는 여성상이라고 볼 수 있는 <마녀 배달부 키키(1989)>의 화가 우르슬라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린처럼, 리사는 시원시원하고 씩씩한 성격을 가지고 어린 주인공들을 도와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을 내려다보지 않고 쳐다볼 줄 아는' 또 한 사람은 바로 포뇨의 엄마입니다. 포뇨의 아빠 후지모토는 절대로 인간이 되게 놔둘 수 없다며 갖은 방법을 써서 포뇨를 바닷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려고 하지만, 정말로 '바다의 어머니' 스러운 포스를 뿜는 포뇨의 엄마 그란 만마레는 아빠의 조바심이 허무해 질 정도로 포뇨가 결정한대로, 포뇨의 인생을 살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런 딸의 인생을 위해, 역시 아이들을 친구처럼 여길 수 있는 엄마인 리사에게 부탁을 하게 되죠. 불과 5살(한국으로 따지자면 7살 유치원생)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무작정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이 때부터 "네 꿈대로 살아라." 라고 아이를 놓아줍니다. 바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자연의 마을로요. 이런 엄마와 할머니들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마법' 과, 그 마법을 믿는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눈앞에 그린 만마레가 찾아오고 관절염이 나아도 그저 신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어른 + 아이 = 어린이
그래서 <벼랑 위의 포뇨> 의 주인공 소스케와 포뇨는 기존의 하야오의 작품 주인공들에 비해 훨씬 연령대가 낮아졌지만, 신들의 세계에 떨구어진 뒤 서러움에 북받쳐 울던 치히로보다는 한결 더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천진난만하긴 하지만, 소스케가 나이에 비해 모스 부호도 정확히 쓸 줄 알고, 의사표현도 확실히 할 줄 아는 반면 포뇨는 말도 짧고 구사하는 마법의 수준도 좀 어리버리합니다. 하지만 이 둘이 그려내는 아이들의 일상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부분의 도시 아이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더 다이나믹 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 먹을 것에 탐욕을 부리다 돼지로 변해버린 엄마 아빠의 캐릭터는 터널이 무섭다며 안기는 치히로를 "혼자 걸어라."고 매몰차게 떼어놓는 장면으로 선명하게 암시 되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리사의 사정없이 엑셀을 밟는 운전 습관도 말 그대로 후덜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일 노란 버스에서 얌전히 앉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가야하는 아이들의 지루함 대신 소스케는 엄마와의 스릴 넘치는(?) 레이스로 대신 하죠. 그리고 엄마가 요양원으로 먼저 떠난 뒤,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소스케와 포뇨는 마법으로 커진 장난감 배를 타고 항해하지만 지나가는 길에 마주치는 어른들 누구도 아이들을 다짜고짜 보호하려 든다거나 질책하거나 얕잡아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기에게 먹일 음식을 나눠주는 포뇨의 착한 마음을 칭찬하죠. 마을 사람들도, 요양원의 할머니들도, 심지어 헐레벌떡 소스케와 포뇨를 쫓아온 후지모토마저도 아이들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이 닥친다면 이 나이 대의 아이들에게는 불가능한 - 저도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의 리뷰어니까요 - 일이지만, 캐릭터의 연령대와 정신적 수준(?)이 크게 괴리감 없으면서도 아이들의 힘만으로 모험하고, 난관을 헤쳐나간 뒤에는 그들을 가장 잘, 그리고 즐겁게 사랑해주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른 취향(?) 애니메이션을 봐왔던 성인 관객보다, 이번에 포뇨로 하야오를 처음 만나게 된 어린이 관객들의 몰입도가 더 높을 수 밖에요.
이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시하는 평화로움의 현실성

포뇨로 인해 한바탕 해일이 몰아친 소스케네 마을은 뜻밖에도 평화롭습니다.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이 휩쓸려가는 쓰나미가 아니라, 바닷가 작은 도시 자체가 고스란히 바닷물로 잠겨벼린 형상이지요. 그리고 육지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이 태고적 원시의 세계에서 비로소 바닷속 마법과 행복하게 만납니다. 어쩌면, 도시 아이들과 어른들의 일상에서 가장 비슷하면서도 자연과 가까운 접점을 하야오는 소스케의 마을과, 벼랑 위의 아담한 집을 둘러싼 상상력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물론 "인간들 때문에 바다가 더러워진다!" 는 포뇨 아빠의 투덜거림을 결코 흘려들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요.
환상이라도, 부럽네요. 적어도 아이들을 즐겁게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일하러 갈 수 있는 엄마의 일상과, 아이들 먹거리에 들었을 지 모르는 멜라민 걱정도 뉴스의 진실에 대한 의심도 할 필요 없이 단순하고 즐겁게 어울려서 국수를 끓여먹을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을의 저녁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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