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를 스쳐간 열한살 (2)

여성 | 2008/10/17 11:07 |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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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편을 읽어주세요~

 

  

 성매매를 스쳐간 열한살 (2)


다정(http://dajungspace.com)





"쟤네 엄마는, 창녀래."


교실은 2초 남짓, 싸늘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다들 가까이 앉은 친구들을 붙잡고 웅성웅성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창녀가 뭐야?"


"몰라. 넌 들어봤어?"


"그게 뭐지?"



물론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습니다. 그건 그렇고 간에 말뜻을 알아들어야 화도 내던가 말던가 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단어를 난생 처음 들은 아이들이 거의 다였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 날 이후 반 전체 학생이 '창녀' 라는 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도 되겠죠.) 나는 창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다만 그 때 내가 연상한 이미지는 그냥 드라마 속 술집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 옆에  화려한 화장을 그리고 앉아 술을 따르고 호들갑스레 웃는, 그런 젊은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열한살 적에 알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의 열두살 인생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창녀가 무슨 뜻이냐고 묻던 친구들에게 -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작 그 말을 들은 싸움 상대방 아이도 뜻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 나는 이렇게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되게 안 좋은 거라고 그러던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때 저런 말도 안되는 인신공격을 내뱉었던 그 아이도 정작 '창녀' 라는 직업(글쎄요, 직업이라기 보다는 '계층'이라고 해야 맞을까요?)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그녀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까지는 몰랐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지만,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 정도면 주위의 형이나 다른 친구들을 통해 포르노 등의 '아저씨 성문화'를 접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성매매라는 게 무슨 일들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직접 가 본 어른 남성들처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냥 그게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직업이라는 낌새는 알아채고 있었기에, 싸움을 한 방에 걸 수 있는 무기로 삼아서 말해버린 게 아닐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요. 쟤네 엄마는, 하고 잠깐 머뭇거릴 때의 그 표정은 자신도 뭔가 말을 하기가 두려운 기색이 얼핏 드러났거든요. '창녀' 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느껴질 욕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리고 들어온 뒤, 그 날은 조용히 잊혀져 갔습니다.





그로부터 십여년의 시간들이 흘렀습니다. 나도 세상사 꽤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겪게 되었습니다. 창녀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던 초등학생이 아니라, 밤마다 집으로 미군들을 들이던 금년이 아줌마를 떠올리며 "난 그것도 모르고 과자만 맛있다고 먹었어." 라고 난남이가 쓸쓸하게 웃었던 까닭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리고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라는, 정확히 말하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라는 것이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성매매는, 그게 '매춘' 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법으로 금지된 것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즈음에서야 알고보니, 내가 차를 타고 지나간 사창가는 아무리 별별 남자들이 꼬인다고 해도 골목 입구에 큼지막하게 "청소년통행금지구역" 이라는 경고판이 붙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성매매를 범죄라고 여기고 그를 없애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그 해 가을, 길목에 이상한 벽보가 붙어있었습니다. 얼핏 멀리서 보면 과외 전단지와 혼동될 정도로 흰 A4지에 검은 글씨로 인쇄된 광고였는데, 큼지막하게 "여대생 대출 30만원부터" 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는 소액 대출이라는 안내와 함께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몇 걸음 마다 건물 벽에 붙어있는 걸 보고 처음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제보를 받고 대학가 주변의 그 광고지들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 광고를 붙인 사채업자를 만나서 (익명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돈을 빌리고 나서 못 갚게 되면 어떡해요?" 라고 리포터가 물었습니다. 그 사채업자, 남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정 갚을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겠지."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판다' 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참 '시키기 쉬운 일'이었습니다.




재작년 즈음이었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고시촌의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이야기했습니다. 고시촌 골목을 걷다 보면, 주로 식사를 하러 나오는 점심, 저녁 때 곳곳에서 아주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이 남학생들에게만 명함 만한 광고지를 나눠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간혹 길바닥에 떨어진 광고를 주워보면, 무슨 무슨 마사지업소라고 쓰여진 것도 있고, 그냥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만 나와있는 것도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동네에 이런 업소가 몇개나 있나 싶어서 길을 돌면서 세어보니, 스무 개도 더 넘더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광고지를 받건 받지 않건, 그 지역에서 법을 공부하는 거의 모든 학생들은 성특별법의 내용에 대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야, 그 지역의 퇴폐업소를 퇴출시키기 위한 정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20대 남자분이 일기처럼 간단히 쓴 글에는, 어제 밤에 지나간 거리에 단란주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아가씨들이 적극적으로 팔을 잡아끌며 '오빠 놀다가세요' 라는 식으로 호객을 하던지, 이거 성매매방지법 시행되는 게 맞기는 맞냐고 기가 막혀 했습니다. 그 곳은 내가 십여년전 지나쳤던 성매매 집결지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지역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진작에 상권이 발달해왔고 특히 유흥가가 많이 생겨나 지금도 성업중입니다. 반면에 여전히, 성매매 업소를 적발하고 근절시키기 위한 예산과 인력은 부족한 상태라고 합니다.





지금 이순간 까지도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냐 합법이냐, 성매매를 없앤다는 게 가능한 일이냐 등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08년인 오늘, 경찰이 대대적으로 단속을 한다고 해도 포주들이나, 시민들이나 모두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경찰과 성매매업소의 오랜 유착관계는 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 특히 성매매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 성구매 남성들은 그동안 한국의 성매매지역에서 횡행했던 납치, 인신매매, 감금, 구타..... 등등만 없앤다면 성매매라는 게 왜 불법이 되어야 하느냐, 개인의 자유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독일이 그랬습니다. 독일도 음성적인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 20만명에 육박했는데, 이들의 인권 유린에 대해 차라리 성매매를 합법화해서 이들을 '노동의 영역' 안에 들여놓자는 주장이 바로 성매매 여성 당사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성매매를 원하는 이들과, 대학교육까지 마친 일부 성매매 경력(?)을 가진 여성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성매매가 합법화 되었습니다. 2002년 1월부터 <성매매 여성의 법률 관계 규정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안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엉뚱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대다수 여성들은 불법이던, 합법이던 시절과 상관없이 여전히 가난한데다가 성매매 업소끼리 과잉 경쟁이 붙는 바람에 성매매 여성의 안전은 뒷전으로 미루는 호객행위(예를 들어, '콘돔 없이 가능하다' 는 홍보)가 만연되었습니다. 음성적인 성매매도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성매매 자체는 합법이라고 해놓다보니, 마약이나 폭행, 감금 등의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데도 경찰의 개입이 더 어려워져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독일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은 성매매 업주와 성구매 남성을 처벌, 계도하고 성매매 여성의 자활을 지원하는 스웨덴의 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스웨덴의 말모 프로젝트 Malmo Project (1977~1983) 는 성매매 근절을 위해 성매매의 해악을 대중적으로 알리면서,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고 자활을 지원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성매매가 만연했던 말모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성매매 여성들에게 경제적 지원과 의료 서비스, 직업 알선을 함과 동시에 대중매체를 통한 성매매 유경험자들의 경험, 성매매 반대 캠페인 등을 꾸준히 전개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81년까지 전체 성매매 여성의 72.5%가 성매매를 그만두었으며, 1983년 최종적으로 남은 60여명(프로젝트 시행 전 성매매 종사자의 10% 이하)은 대부분 의료 지원이 더 필요한 마약 중독자였다고 합니다. 이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성매매 종사자들이 다른 직업을 갖게 되고, 성매매 수요가 줄어든다면 성매매의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후 1998년, 스웨덴은 "여성의 평화" 라는 법률을 발효하여, 성매매 종사자를 처벌하지 않는 대신 성구매자를 처벌하여 성매매 자체의 산업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 앞서, 성매매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거나, 집창촌을 없애고 나니 유사 성매매 업소가 만연한다는 보도를 들으면 늘 "거 봐, 성매매는 유사 이래 없앤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라고 비아냥대곤 했습니다. 여성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감히 성폭력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성폭력 빈도가 낮은데도, 돈 내고 성을 살 수 있게 하면 성폭력도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포주들의 말을 아직도 많은 이들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행착오나 기대 이하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자체 만으로 정책의 정당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매매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면,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할까' 라고 먼저 궁리해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성과가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2007년 당시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는 불법이다"는 국민의식은 2004년에는 불과 30.4% 였으나 2007년에는 92.4% 로까지 늘어났으며, "성매매는 사회적 범죄행위이다" 는 대답에는 75.2%의 국민이 '그렇다' 고 답했습니다. 2004년에는 간신히 절반을 넘는 53.2%의 사람들만이 긍정적으로 답변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성매매특별법에 따른 정책의 성과로, 14개 성매매업소 집결지 여성의 자활지원사업에 144명의 여성들이 참여하여 56%인 810명이 탈업소, 자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게 모두 2007년의 일입니다. 목표를 50% 달성을 했건, 5% 달성을 했건, 이를 기회로 성매매의 인권 유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성들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나름의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신체와 인격을 학대하는 일을 어떻게 '직업'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여자들은 여대생에서 창녀로 가는 계급하락에 불편해한다." 라고까지 말했다지만, (물론 이들은 성매매 피해 경험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듣지 않겠죠.)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한 호기심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성매매는 성의 자유가 아니라 억압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이며, 모든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까지도 함께 연대하여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기막히게도, 대부분의 성매매는 다름아닌 가난때문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태어났다면, 유치원 다닐 나이부터 팔려가 성매매에 동원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캄보디아 경찰은 대대적으로 아동 성매매 단속을 벌이기로 했는데, 성매수자를 형사처벌한다는 거리의 경고판은 캄보디아어와 "한글" 로 적혀있습니다.) 만약 내가 파키스탄에서 남자아이로 태어났다면, 역시 돈을 벌러 갔다가 남자 어른들의 성착취에 동원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지금도 심심찮게 빚에 쫓겨 성매매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연들을 기사로 접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미군 부대의 수많은 한국인 여성들이 '국가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모두 성매매여성 당사자의 가난과, 약한 사회적 지위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 여성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합니다. 여성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0% 정도밖에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주 느리게나마 여성-남성의 차별이 철폐되면서 지금과 같은 소득격차가 심화되어 구조적 빈곤이 자리잡는다면, 그 때에는 생계를 위해 성매매에 나서는 남성들이 얼마나 많아질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나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이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이미 한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아시아나 중동 지역보다 훨씬 평등하다는 유럽 사회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3세계로부터 건너오는 성매매 여성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을 비롯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세계 어디에서든 권리를 찾는 '현재진행형' 입니다.





여기까지 알고 나서야 내 열한살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여자들도 한 번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라도 집창촌이라는 델 가 봐야 한다, 얼마나 많은 우리 주위의 평범해 보이는 아저씨, 오빠, 남동생들이 그 곳을 기웃거리는지 눈으로 보고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러고보니 나도 예전에 한 번 지나쳐 본 일이 있었지."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스쳐 지나간 그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오랫동안 돌이키지 않았다고 해서 내 기억이 거짓인 것은 아닙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된 것만큼 기억속의 경험을 되살려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날 얼떨결에 그 길을 지나며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했지만, 나는 분명히 '잘못'을 한 거였다고 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줄곧 착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저질렀던 사소하거나, 큰 잘못들은 대부분 그 때 그 때 죄책감이라든가 반항심을 가지고 한 것이거나 최소한 그게 잘못이라고는 하더라는 건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전혀 잘못인 줄도 모르고 까맣게 잊고 살다가 성매매 여성의 진짜 현실에 대해 알게 된 뒤에 되살아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무리 바깥의 집창촌이 무섭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져도,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안은 고요하고 안전할거라 믿었습니다. 내가 타고 간 아버지의 차, 그리고 그 길을 지나갔을 수많은 백화점으로부터의 자가용들은 그냥 차가 아니었습니다. 그 길에서 사는 사람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제도권'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치스러운 자와 가난한 자의 대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중고차는 이미 낡았고, 나도 곱게 꾸미는 부잣집 딸아이가 아니라 바깥에 나가면 금세 옷을 더럽혀버리기 일쑤인 평범한 여자아이였으니까요.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언니', 그리고 그녀의 수많은 동료들이 어둑어둑해지기 전까지 마주치는 그 길의 수많은 눈들 중에서 나도 그 하나였을 것입니다. 지금의 내 또래, 아니면 몇 살밖에 더 많지 않을 그 때 그 분도 누군가의 딸이고 언니이고 누나일텐데, 그들과 선을 긋고 가정을 꾸려가며 사는 세상 사람들은 성매매가, 그리고 성매매여성들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네들을 멸시하고 싫어합니다. 화대만 넘겨준다면 그 다음부터 존중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그들, 수많은 폭력을 일상적으로 견디던 그 분들을 나는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 신기함 반 두려움 반으로 바라보았지만, 그 때에도 이미 저들이 어른들의 앞에서는 금기시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건 눈치챘으니까요. 이건 나 뿐만 아니라 그곳을 지나쳤던 다른 아이들, 그리고 같은 반 아이를 향해 "쟤네 엄마는 창녀래." 라고 말했던 5학년 아이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자동차를 타고가며 자신들을 경멸하거나, 아니면 욕망의 객체로만 바라보던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 같은 열한살 짜리 아이의 시선마저 받아야 했던 여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물론 그 때의 내 기억의 일부가 착각이었을 가능성도 아주 작게는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짜증나는 일이 있어서 그 언니가 나를 노려보았던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 여부를 떠나서 나의 행동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려서,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른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는 것도 죄입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그 순간에 죄라는 것을 몰랐기에 그 책임이 덜어질 수 있을지언정, 그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내가 스쳐갔던 골목의 그녀들과,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난 뒤

"생각으로만 미안해 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 고 충고해 준 분을 생각하며.





PS - 스웨덴의 말모 프로젝트와, 성매매가 왜 인권 침해가 되는지 등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펴낸 <섹슈얼리티 강의>, <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 를 읽어보세요. 그리고 유럽으로 오는 제 3세계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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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1tree 2008/10/21 15:54 답글수정삭제

    구독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

  2. 혁수 2008/11/13 09:32 답글수정삭제

    성매매특별법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는 법률이 아닌 건 사실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성매매의 근절이라든가 하는 점에 찬성하지는 않는데.

    인권침해 아닌 유입원인과 활동환경에서 성매매 종사자의 갖가지 결정들이
    내려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는 데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지만
    사람의 성이 매매되어서는 안 되고, 그 매매를 무조건 근절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들렀어요~ 그럼! 또 봬요.~!!!^_^

    • dajung 2008/11/13 11:05 수정삭제

      와! 블로깅을 끊으신(!)줄 알았는데.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흐음....사실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라는 걸 단 한 건도 없이 100% 근절시킨다는 건, 그게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당분간 불가능할 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근데 성매매특별법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반 정책의 여건 문제로 인해서 법의 취지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고 앞에서 썼는데^^)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먼저, 성매매라는 것의 폭력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더 눈을 떠야 하겠죠. CEDOW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 한참 됐는데도, 여기저기서 줄창 성매매 논쟁이 벌어지는 건 '자유로운 성' 의 맥락에서 성매매도 가능하다는 건데....지금까지 대중문화 영역에서 '성 상품화'는 아주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니까, 그런 걸 다 합해서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인권인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죠. 문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권'이 한참 뒷전으로 밀려있다는 것?

  3. 2009/03/28 20:48 답글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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