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를 스쳐간 열한살 (1)

여성 | 2008/10/13 15:46 | 다정
 
이 글은 제 경험담(이니까 당연히 실화겠죠^^)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입니다.
읽기 편하도록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성매매를 스쳐간 열한살 (1)

다정(http://dajungspace.com)




토요일의 거리는 잔뜩 붐볐습니다. 서울 한복판은 거리의 사람들도, 달리는 자동차들도 어찌나 많은지 엄마 손을 놓쳐서 길을 잃는 꼬마 아이들도 많을만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 이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주말에 백화점으로 나온 거였는데,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겨우 백화점 주차장에서 차를 내리고 밖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선 참이었습니다. 나는 여느때처럼 뒷좌석에 기대 앉아 차 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바깥의 4차선 도로 주위만 북적거리는 줄 알았는데 나가는 길에도 차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고, 덕분에 또 교통체증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슬슬 지루해지려던 참이었습니다. 갑자기, 앞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았던 아버지가 뭔가 이상하다는 말투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여기로 나가는 거 맞아?"

그제서야 내 눈에도, 그 길거리의 사람들이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 주차장을 나온 우리 차는, 다른 자가용의 행렬을 따라 옆으로 한 번 길을 꺾었습니다.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즐비했던 높다란 백화점 건물들, 그리고 다른 고층 빌딩들은 나가는 길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처럼 낮은 높이의 슬레이트 지붕을 걸친 일층짜리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그 낮은 집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앞에 서있는 사람들, 아니 여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골목의 수많은 집들은 모두 유리창 샷시로 되어있었는데, 정작 그 창에다가는 방안이 비쳐나오지 않도록 시트지를 빼곡히 붙인 바람에 집안 광경은 들여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들 앞에, 정말 많은 여자들이 치장을 하고 나와있었습니다. 남자는 한 명도,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애 어른 할것 없이 다 다니는 길에 이게 뭐하는 짓들인지, 참."

"그러게, 어떻게 백화점 뒤에 이런 게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가 막히다는 듯, 한마디씩 멋쩍게 말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거기가 바로 창녀촌, 매음굴, 집창촌, 사창가 등 정리되지 않은 이름들로 불리우던 성매매 집결지였습니다. 물론 서울로 올라온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초등학교 4학년생이던 내가 성매매는 커녕 성(性)에 대해서도 뭘 알리 만무했습니다. 그저 내가 살고 지나온 숱한 땅들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던 것입니다.





남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만 특이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긴 골목의 양 쪽으로 줄줄이 늘어선 유리창 집들 앞에서 대기하는 여자들은 모두 진한 파랑, 진한 초록, 진한 노랑 등 원색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화장을 딱히 요란하게 했다거나 헤어스타일이 특이한 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화장은 진한 색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렇게 화장한 얼굴만 보면 그 길 바깥의 다른 여자들과도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녀들이 입은 드레스는, 분명히 웬만한 사람들은 살면서 거의 입을 일이 없는, 어깨가 드러나는 긴 자락의 드레스인데도 하나도 화려해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여자들의 드레스에는 장식이 하나도 없고 그냥 진한 색깔의 원단을 끊어 적당히 박아 만든 것만 같았고, 텔레비전에서 본 미스코리아라든가 여배우들의 드레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윤기가 없었습니다. 미술시간에 쓰던 포스터칼라 물감과 비슷한 정도의 빛깔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나를 무섭게 한 건 이 모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의 표정은, 분명히 거기에서 백 명도 더 본 여자들의 표정은, 모두가 한결같이 싸늘하고 어두웠습니다. 드레스를 입었지만 그들이 서 있거나 앉아있는 곳은 허름한 골목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였고, 그 차림으로 그녀들은 집 앞에 놓인 의자나 평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중에, 두 사람 이상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각자 앉아서, 또는 벽이나 기둥에 기대어서서 인상을 찌푸리고들 있었습니다.





본능적으로, 겁이 더럭 났습니다. 지난 해 가 본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 보다도 더 오싹한 곳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걸어서 여기를 지나치는 게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간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4차선 도로로 나가는 길은 그 골목 하나밖에 없었고, 수많은 차들이 우리 차 앞 뒤에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 말고도 백화점에서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들과 마주치는 것입니다. 그 짧은 길에서의 긴 시간동안, 나는 그렇게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슬금슬금 차창 밖의 광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 학교에 가보니 이미 그 백화점에 갔거나 가 봤던 아이는 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그 뒷골목에서 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야, 거기 뭐하는데야?"

"근데 막 이상하고 무섭지 않어?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하던데."

"우리 엄마랑 아빠는 거기 지나갈 때마다, 나랑 오빠한테 맨날 '고개 숙여! 고개 숙여!' 라고 하고 바깥에 못 보게 한다, 하하하."

거기가 뭐하는 덴지 잘 모르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열한살의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의 생각을 읽어내는 눈치는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다른 친구들도 그 곳이 어떤 곳이냐고 어른들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건, 아버지건 그런 물음에는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돼."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거나 "그런 건 몰라도 돼!" 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멋쩍음을 감추면서 화를 내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어른들의 심기를 딱히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볼 거는 다 봤다는, 그런 자그마한 일탈감을 맛 보는 것에 재미있어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냥,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을 때 보게 되는 TV의 드라마들에 나오는 술집의 방과 붉은 조명 아래, 허술하게 양복을 걸친 아저씨들과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의,그런 '어른들의 세상'인가보다 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남았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후 한 달쯤 지나, 다시 아버지의 차를 타고 온 가족이 그 백화점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설 때만해도, 한창 부모님과 함께 여기저기를 다닐 때에도 지난 번 지나친 그 뒷골목을 떠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지난번처럼 차에 오르면서 내가 다시 그 길을 지나가게 될 거라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이미 한 번 지나갔으니까 처음처럼 무섭지는 않을거란 말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쭈뼛쭈뼛하게 볼 게 아니라 겁내지말고 - 물론 열심히 구경하는 티는 내지 않으면서 - 확실히 구경해봐야겠다는 심보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그 길에 늘어선 집들, 그 여자들이 기괴해보여도 내가 안전하리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깥에서 빗줄기가 억수로 퍼부어도 차 안에 가만히 있으면 타닥타닥하는 빗소리만 들려오고 물은 들이치지 않는 것처럼, 백화점 뒷골목의 그 집들에서 무슨 무서운 일이 생겨도 아버지의 차 안은 조용할 테니까요.





여전히 주말의 백화점 주차장에서는 차가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부러 뒷좌석의 차 옆문에 기대 앉았습니다. 무서운 것까지는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긴장이 되어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드디어 느릿느릿한 자가용들의 행렬을 따라, 우리 차가 그 골목을 들어섰습니다.
지난 번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백 명, 아니 이백명도 더 넘은 수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길가에 즐비한 건 똑같았습니다. 모두 그 드레스들을 입고,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광경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 명인가 두 명인가, 드문드문 여자들과 이야기하는 남자 어른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역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습니다. 지난번처럼 앞좌석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길을 지나는 내내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이런 곳을 지나가는 것을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서 나도 입은 꼭 다물고 조용히, 하지만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였습니다. 나는 점점 더 대담해져서, 차가 막히는 동안 차창 밖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비교적 길 가까이에 서있던 한 여자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습니다.

"......"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언뜻 봐서 스무 살은 넘고 우리 어머니의 나이까지는 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길을 지나는 많은 자동차 속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채 고개를 돌리고 있던 여자들과 다르게 그녀는 나를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진짜 나랑 눈이 마주친건가 싶어서 몇 번 눈을 깜박였습니다. 그렇지만 눈을 감았다 떠도 그녀는 나를 피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 사람은, 짙은 남색의 드레스를 입고 길가에 서 있던 그 여자는 내 시선에 흔들림없이 나를 지그시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채 십초도 되지 않을 동안이었지만, 내가 놀라서 더 눈을 못 떼고 그녀를 바라보는데도 계속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차가 느릿느릿 그녀를 지나쳐갔습니다. 후다닥 뒷유리 창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내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동안, 그녀는 유리창 속의 나를 향해 날카로운 눈길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차츰차츰 멀어져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기 전까지, 그렇게 그 여자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이듬 해, 나는 5학년이 되었습니다.
한 살이 더 먹었지만 내 삶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종종 그 백화점에 다시 가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그냥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한 적이 대부분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 백화점의 뒷골목을 지나친 건 딱 한 번 더 뿐이었습니다.
늦여름의 그 날에는 비가 왔습니다. 빗물이 고여 추적추적한 소리가 나는 길을 따라 차들이 빠져나가는데, 웬일로 지난 번 처럼 막히지 않고 비교적 빨리 그 골목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그 낮은 집들의 문은 모두 굳게 잠궈져 있었고, 밖에 나와있는 여자들은 물론 거의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곳이 정화구역으로 지정되어 모두 철거되었다는 것은 중학교 올라가기 직전에야 알게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가 보게 된 그 골목은, 모든 집들이 진작에 철거되고 텅 빈 땅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다른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더 넓은 길이 닦였다고 합니다.




정확히 며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5학년 교실의 어느 가을날, 수업시간이었지만 담임선생님이 잠깐 업무를 보러 교무실로 내려가는 바람에 우리 반 아이들은 그냥 우리끼리, 선생님이 없는 상태치고는 웬일로 꽤 조용히 하면서 자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실 뒤 쪽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습니다. 사실 그 바로 전 쉬는 시간에 사실 우리 반 남자아이 두 명이 싸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말려서 주먹다짐까지는 가지 않고 일단 싸움은 그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분이 풀리지 않았던 둘 중 한 아이가 또 싸움을 붙으려는 태세가 된 것입니다.


"이 XX 너...."

"야, 그만해 이제!"

"참아, 참아."


가까이 있던 다른 친구들이 못내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욕을 하는 남학생을 서둘러 타이르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욕을 듣는 상대방도 기분이 좋을 리 없으니, 욕을 한 쪽도, 들은 상대방도 모두 씩씩대지만 친구들 눈치가 보이는지라 일단 분을 삭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했던 그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습니다.


"쟤네 엄마는....."


누구네 엄마가 어떻다 저떻다 하는 인신공격이 싸움 도중에 나오는 거야 특별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쟤가 뭐라고 말을 하려나 싶어서 모두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잠깐 뜸을 들이던 내 같은 반, 초등학교 5학년 열두살의 아이는 아주 잠깐 머뭇거리다가 곧 깔보는 듯한 말투로 이 말을 뱉었습니다.


"쟤네 엄마는, 창녀래."


교실은, 일초 남짓 싸늘해졌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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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이 2008/10/17 02:14 답글수정삭제

    긴장감이 마구마구 전해지네요.
    앗...2편은 오늘이네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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