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공연 리뷰를 올립니다. 이번 작품은 2005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개막작이자, 2008년 한국 연극열전 참가작인 <블랙버드> 입니다^^
일본에서 물건너왔다던 이른바 "원조교제" 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2000년대 초반, 검찰 당국은 이제부터 미성년 여성에 대한 그 '원조교제' 라는 용어를 '청소년 성매매' 라고 바꿔 부르기로 했다고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10대 여성에 대한 성범죄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원조교제' 라는 용어가 무슨 놀이를 빗대는 은어처럼 쓰여서 그 행위의 본질에 담긴 비도덕성이나 죄의식을 희석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죠. 물론 '성매매' 라는 포괄적인 개념이 우리가 알고있는 1:1 성매매 알선의 '원조교제' 와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행위의 명칭을 바꾸게 된 연유를 돌이켜보면, 거꾸로 그 단어 속에 투영되었던 것이 어떤 종류의 욕망이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겠죠.
이를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분노한 여자아이는 열두살 우나(추상미) 였습니다. 우나는 이웃의 40대 아저씨 레이(최정우)를 '순수하게' 짝사랑 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을 때, 스물일곱살의 어른이 된 우나는 자신을 탐했던 레이(최정우) 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들이 회상하는 15년전의 사건과, 그 때 못다했던 말들을 들으며 우나와 레이가 섬에서 헤어지게 되는 사건을 퍼즐처럼 맞춰나가게 되지요. <블랙버드> 역시, 캐릭터 둘이 긴장을 조절하며 극의 흐름을 끌고가는 심리극 답게 배경이 되는 장소도 고정되어 있고, 인터미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극작가 데이빗 해로우어 David Harrower 가 이들을 15년만에 맞닥뜨리게 한 장소는, 레이의 회사 한 켠의 허름한 사무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친 레이의 사무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 건물의 휴게실은 쓰레기로 잔뜩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다......사랑이었을까?
하지만 <블랙버드>가 드러내는 것은 이들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었다, 나이와 성욕을 극복한 로맨스는 가능하다는 식의 새삼스런 논쟁은 아닙니다. 해로우어가 주목한 것은 그 왈가왈부하는 도덕적 잣대들 너머로 제껴졌던 당사자들의 '마음' 이었습니다. 우나를 구해준(?) 어른들은 다 네가 '당한 것' , '배신당한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극의 초반부, 우나가 꽤 오랫동안 길에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던 청년을 욕하면서 자기 집이라면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 못 버린다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은 우연일까요. 우나는 이십대가 넘어가도록 레이를 죽도록 증오하면서 살았고, 레이는 누차 강조해서 나는 '그런 사람들' 이 아니다, 네게 느꼈던 것은 정말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나는 십오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레이가 왜 도망치듯이 모텔에서 나갔다가 붙들리게 되었는지 진상(혹은 변명)을 들을 수 있었죠. 우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레이가 처절하게 그녀에게서 몸만 취하고 버린 것 같은데, 레이의 말을 들어보면 또 그런 건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는 외관이 갖춰졌지만 문을 열어보면 여기저기서 쓰레기 더미들이 뒹굴던 그 휴게실처럼, 두 사람의 애증은 전혀 정리되지 못하고 위태롭게 널려있었습니다. 이건 그들을 둘러싼 부모, 판사, 교도소 사람들, 우나를 상담한 어른들 - 그 '다른 사람들' 모두가 알지 못했던,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나는 웬만큼 레이에게서 해명을 듣게 되자, 피식피식 웃다가 급기야 너저분하게 뒹굴던 쓰레기 뭉치들을 발로 차면서 웃음을 터뜨리죠. 이러면, 우나와 레이에게서 떨구어지지 못했던 애증의 덩어리들도 그렇게 쉽게,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던 것일까요.
아저씨, 날 혼자 내버려두고 가지마

정황으로 보건대 그 아이가 지금, 다시 레이가 십오년전의 우나를 대하듯 만나오는 교제상대는 아닌 듯 했습니다. 이름까지 고상하게 '노블리스' 라고 바꾸고 조용히 살아오던 레이였고, 우나를 가리키며 "저 아줌마 누구야? (나가있으라는 말에) 싫어, 나 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어." 라고 말하는 아이는 레이가 새로 만나는 애인의 딸이라고 했죠. 하지만 줄곧 나는 그렇고 그런 소아기호증 환자들과는 다르다고 말하던 레이는 아이가 나타난 순간부터 계속 당황해하다가, 급기야는 우나를 밀치고 도망치듯 그 방을 뛰쳐나가고 맙니다. 남겨진 것은 여전히 쓰레기들이 파편처럼 널린 방 속에 넘어뜨려진 우나입니다. 해로우어는 끝까지 레이가 정말 우나를 사랑했을까, 라는 확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다시금 우나에게 찾아온 절망, 그리고 끝내 외로움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마음이죠. 그녀가 혼자 남아 쓰러진 공간에는 여전히 치워지지 못한 쓰레기들이 널려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나는 "난 아직도 같은 도시에서 살아요. 내내 거기서 살았어요." 라고 했지만, 레이는 사는 곳도 바뀌고, 회사도 바뀌고, 다른 여자와 다른 관계를 맺고 있었군요.
"블랙버드" 는 예전, 노예선에 강제로 실려 팔려가던 흑인 노예들을 일컫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의자까지 들어 휘두르던 우나는, 곧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거리에서 레이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나의 마음은, 아직도 심장에서 피가 멎지 않은 검은 새의 상처는 아물어질 수 있을까요. 그건 누구에 의해서일까요. 레이? 아니면 우나 스스로? 다른 누군가가?
PS - 인상적인 것은 우나를 연기한 추상미씨입니다. 추상미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조목조목 다 털어놓으면서도 히스테릭한 증세를 숨기지 못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하는 순간에도 관객의 시선이 레이가 아닌 자신에게 머무르도록 톤을 맞춥니다. (물론 개개인의 관점마다 다를수 있겠지만) 이는 관객들의 시선이 끝까지 우나의 심리에 맞춰가는 걸 가능하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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