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불거졌던 여러 표절 사건들에 대한 소회를 적어봤습니다. 주로 '글쓰기' 를 예로 들어썼고, 제 개인의 경험을 섞은 에세이입니다.
표절을 이기는 사회
다정 (http://dajungspace.com)
사실,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네티즌인 나마저도 그 '표절'이라는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을 뻔 한 적이 있다. 2004년 가을, 한 대학생(이라고까지만 밝힌 어떤 네티즌)이 "레포트로 당신의 체벌에 대한 글을 베껴 썼다." 라고 네이버 쪽지를 내게 보낸 게 아닌가. 여기까지는 의외로 담담하게(?) '이런 일이 결국엔 한 번 일어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바로 뒤에 이어진 요구는 나의 상식을 의심케했다 ."조교가 검색해서 내 레포트가 표절이라는 것이 발각되지 않도록 (내 블로그의 체벌글) 원문을 지워달라."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하기 전에 레포트를 엎으라고 공개적인 경고를 보내서 이 일은 짤막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관련 글들은 모두 비공개로 바꿔둔 상태다.), 몰래 베끼는 걸 넘어서서 원작자의 협조(?) 까지 구하는구나 싶어 못내 씁쓸했었다.
글이라는 게 이렇다. 영화나, 음악등 미디어를 타는 컨텐츠의 경우에는 그것이 꽤 긴 제작 기간을 거치고, 제작과정에서 더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표절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밝혀지고 논란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논문 등의 경우, 워드프로세서 작업에서 몇 문장을 베끼는 것은 키보드의 Ctrl C + Ctrl V 만 이어서 누르면 너무나 신속 간단하게 이루어져 버린다. 이는 인터넷이 '대세' 가 되기 전의 PC 통신 유저들에게서도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돌던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글쓰기라는 일 자체는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이 있어야만 하는 분야도 아니고, 말을 구사하고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저작권 문제는 영상물과 음악 파일을 불법 다운로드하는 데서 가장 크게 거론되고 있지만 (물론 해결이 되려면 아직 먼 듯 하다.), 그 경우는 대부분 컨텐츠의 수익권에 대한 분쟁이고 글에 대한 표절처럼 창작자의 이름 자체가 사라지는 사태는 드물다. 그래서 문학이건, 비문학이건 상관 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서도 '글' 은 가장 표절의 위험이 큰 분야가 아닐까도 싶다.
그러나,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글을 '잘' 쓰는 건 정말 어렵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글쓰기에 대해 경험하긴 하지만, 이것이 '자기가 내킬 때, 쓰고 싶은 것 아무거나 마음대로' 쓰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는 일기 검사로 인해 학생의 사생활 침해라는 큰 부작용이 있고, 숙제로 글을 써서 제출해야 하며, 논술 같은 경우는 아예 형식과 출제자의 질문을 파악한 뒤에 그에 적합한 답안을 구성해내야 한다. 물론 이런 글쓰기 교육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며 이런 과정으로 국어 능력이 향상된다는 견해에도 동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율적인 글쓰기' 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리고 더 쓰면 쓸수록 고민이 늘어나게 된다.
기사나 논문등의 비문학의 경우에는 자신의 견해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정확히 풀어내느냐가 글의 관건이다. 하지만 글의 개요를 잡고, 본문을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 '필자' 는 '독자'의 입장에서 당연히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한국어만 해도 온갖 어휘들은 넘쳐나는데, 나의 글은 그 수많은 표현들 중 내 생각을 정확히 드러내도록 구성되어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읽는 이들에게 '흡인력' 을 발휘할 수 있는가, 즉 글 자체의 짜임새와 재미를 고민한다면, 똑같은 분량의 글을 쓰더라도 그 고민을 겪은 글과 겪지 않은 채로 태어난 글의 질이 같을 수는 없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고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더 뛰어난 글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신경쓰고 노력을 한다는 의미이며, 그 결과물이 그가 훗날 쓰는 글일테니 말이다. 좋은 글은 결코 '써제끼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워낙에 글을 많이 써서 웬만한 칼럼은 한 시간 이내에 뚝딱 써 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더라도, 그것은 성의 없이 대충 쓰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으로 인해 작업 시간이 단축되는 것일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런 고민을 한다. 그러나 취미(?)로 글을 쓰는 나에 비해, 원고료와 인세를 받으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의 실력과 책임감의 차이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소설 쓰기에서도 이런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 커지기 마련이다. '픽션' 을 창작하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길고 고단한 작업인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이야기속에 녹여내려면 그에 맞는 캐릭터들을 구상해야 하고, 배경으로 삼을시 공간에 대해 빠짐없이 취재해야 하며, 독자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극적인 장치들을 이용해가면서 '재미있게' 써내려 가야하기 때문이다.게다가 문장과 단어를 창의적으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참신한 어휘와 표현들을 떠올리고 기억하는 습관도 있어야한다. 소위 말하는 '순수 문학' 이 아니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기대치에 맞는 수준의 이야기를 써내려면 - 물론 독자의 기대치와 안맞아서 비난받는 글도 많지만 - 글을 잘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노력에 비한다면 압축되어 묶여진 책 한권의 양은 허무하리만치 얄팍하더라도, 그 한 권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노력은 오히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니까' , 아니면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은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는) 천재인가보다.' 라는 막연한 생각에 미처 독자에게 다 전달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퇴마록> 시리즈가 점점 더 방대해지고 편수가 늘어난 데에는 이우혁 작가가 직장 생활을 접고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던 데 있었고,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은 구치소에서 사형수와 만나는 이야기를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론이 빠짐없이 엮여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연재물 (연예인 팬픽션이나 동인물, 로맨스 소설)등이 실제 출판물에 비해 '글빨' 이 달리는 것 같지만, 그는 아마추어 작가의 능력 부족만이 아닌,글쓰기를 본업으로 하는 전업 작가에 비해 글쓰는데드는 시간과 노력이 덜 할 수 밖에 없는 일반인(?)의 사정도 있다. 박경리 작가께서 <토지> 시리즈를 완간하는 데 괜히 25년(1969~1994년)이 들었겠는가. (나는 이선미씨- 드라마 쪽에서는 필명 이정아씨로 활동하는 - 가 <태백산맥>과 <토지>의 일부 문장들을 베껴서 <경성애사> 를 쓰게 된 과정이, 아예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베낄 부분을 찾으려 했다기보다는 '간편한 취재' 의 방법으로 다른 작가가 먼저 자세히 써놓은 일제시대의 상황을 읽어보다가 표절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보기도 했다. 물론 어떻게 도용을 했건 잘못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래서 '저작권' 의 보호는 창작물에 대한 사용, 수익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창작자 (창작에 공을 들이는 것이 글쓰는 사람만은 아니니까 말이다.)가 노력하고,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토양을 형성한다는 데서 더 중요하다. 이는 글 뿐 아니라 모든 문화 컨텐츠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좋은 글,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그것을 취미로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창작 작업에 더욱 쏟아부어야만 가능하다. 이럴 때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고 너도나도 베끼는 데 익숙하다면, 적어도 차기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력의 자본마저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몇명이나 남아 공들여 노력할수 있겠는가.
물론 기존의 작품들을 배우고 참고해가며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를 얻는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까지가 그냥 '비슷하기만 한' 것인지의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해놓기는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낀 사람이 뭐라고 발뺌을 하든 변명를 늘어놓든, 자기가 정말 베낀건지, 억울하게 표절 의혹을 받는 건지는 베낀 사람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는 사실이다. '베끼기' 는 당연히 비양심적이고 나쁜 짓이다. 그렇지만 막상 늘 새로운 걸 창작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른 작가의 재능이나 작품이 샘나는 경우도 많기는 하다. 그러니까, '표절'의 충동에 시달린다면, 나는 양심과 함께 지금 당신이 하는 '창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재능과 관계없이 창작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한 이유는, '내 작품' 은 오로지 나 자신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나 칼럼니스트 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그저 '호구' 로 글을 쓰는 데 급급해질 수도 있지만, 그 때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자신의 생각과 꿈을 '표현' 하는 기쁨에 있을테니 말이다. 그 기쁨 만큼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는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내 주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도 영원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통해 마음 속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 쓰는 재능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어떤 일이라도 잊을 수 있습니다. 슬픔은 사라지고 새롭게 용기가 솟아납니다. 그런데 내게 과연 문학적인 재능이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꼭 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 나의 상념, 이상, 꿈 등 모든 걸 새롭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1944년 4월 5일, 안네 프랑크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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