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밑바닥에서> 6차 공연 (2007년 2월24일~6월 24일 공연팀) 의 리뷰입니다. 저는 이 공연을 보기 전,후 모두 원작인 막심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 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책 자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시중의 웬만한 서점에는 없고, 예스24에도 딱 한 권만 검색되더군요. 그런가하면 전자도서 미리보기로 등장인물과 도입부를 읽어봤는데, 이 공연 내용과 많이 다르기도 했구요), 또한 이 작품의 각색,작사,작곡,연출을 도맡아 한 박용전 감독의 인터뷰를 읽고나니 원작을 충실하게 번안하는 데 중점을 둔 각색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글 속의 #표시는 노래 제목입니다.)


 

              색깔과 깊이

-뮤지컬 <밑바닥에서 - 그 마지막 계절> 리뷰-

                2007.3.21 대학로 열린극장


 

다정(http://dajungspace.com)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주인공은 러시아 혁명 전후 시기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펼쳐지는 가난하고 비극적인 삶들 그 자체다. 특히 이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어둡고 비관적인 톤을 유지하는데, 의도하지 못한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도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인생에 대해 매춘부 나스짜(지현)는 "어떻게 된게 변하는 게 없냐, 너나, 나나...." 라고 다른 캐릭터를 대표해서 자조한다. 이러한 시공간적인 배경이 현대 한국의 관객에게 자칫 낯설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밑바닥에서>는 여러 해를 넘기며 꾸준히 공연되었고 2005년에는 한국뮤지컬대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연사진출처: 인터파크)




그런데, 정작 이 작품에서 삽입되는 음악들은 '뮤지컬 음악'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밑바닥에서>에서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그들 자신의 내면을 충실히 묘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그노래들이전체적인 사건 전개에 기여하는 바는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남자들 앞에서는교태스럽게 웃으며 춤을 추던 나스짜는#사랑은 보석보다 더한 사치 를 부르며 자기 신세를 읊조리고, 타냐(하선경)는 딸 안나(강초롱)의 죽음을 슬퍼하며 #잘 자라, 아가 를노래한다. 그러나 캐릭터 간의 갈등이 폭발하거나 국면이 전환되는 모든 순간에는 음악이 전혀 쓰이지 않는다. <밑바닥에서>의 메인 테마곡이라 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톡의 봄 역시, 나타샤가 신고식(?)으로 부르는 극 중 노래일 뿐이지 극의 진행과는 별 상관이 없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노래를 전부 삭제한다 하더라도 내러티브 면에서는 전혀 다칠 게 없는 셈이다.

<밑바닥에서>의 등장인물은 무려 10명이고, 이들 중 여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타샤(홍민희)가 나스짜,타냐,페페르(이동수), 배우(윤석원)등 한 사람 한 사람씩의 사연을 듣고 위로해주는 순서를 밟아가게 된다면, '뮤지컬 음악'은 분절적으로 진행되는 사건들을 이어붙여서 전체적인 짜임새를 다듬는 역할을 해줘야 할 법 하다. 그러나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을 꼬박 채워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음악은 이런 점을 보완하기는 커녕캐릭터들의 넋두리로만 활용되고, 결국 이렇게 '1차원적'으로 삽입된 뮤지컬 음악이 오히려 내러티브의 발목을 잡는 정반대의 결과가초래된다.극중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가'의외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나타샤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는 맹점은 이렇게 늘어지는 극의 흐름과 맞물려서 그녀가 '비극의 단초' 가 되는 설정이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한다. 물론 남의 말 잘 들어주고 위로하는 능력으로는 모모 뺨칠만한 나타샤지만, 정작 그녀가걱정해 준 모든 이들은 한결같이 파국을 맞게 된다. 안나가 외출했다가 죽어서 돌아온 것도, 바실리사(백은혜)가 질투심에 휩싸여 페페르를 살인자로 몰아가게 된것도, 배우가 자살한 것 모두 나타샤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의 홍보자료에 나타난대로 '밑바닥의 절망' 이 표현되려면,중점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되는 것은 나타샤가 아니라나머지 선술집 사람들이었다. 즉 캐릭터들은 나타샤의 위로로부터 '홀린 듯이' 희망을 얻었다가 더욱 불행해지면서 '배신감' 내지는 '분노' 정도 되는 절망을 느껴야지 그게 관객에게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는 말이다.

혹, <밑바닥에서> 가 나타샤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않고 원작대로 한 노인이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설정을 유지했다면,다른 이들보다 몇십년은 세상을 더 산 노인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이들이 '속아 넘어갈만한' 연륜을 보여줌으로써 신비감을 유지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뒤통수 맞은 느낌'을 줄 수 있었을 지 모르겠다.하지만 대걸레질 하면서 경쾌하게 노래부르고, 남자의 사랑 고백도 뒤늦게서야 눈치채는 어리버리한 또순이인 나타샤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약주고 병주는' 역할보다는 그냥 맘씨 고운 아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끔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나타샤는 페페르와 바실리사, 백작(김승환)의 애정 관계에 뜻하지 않게 휘말리면서 그녀 자신 역시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되어 관객에게 '동정받을' 여지마저 얻는다.

이렇게 나타샤가 지나치리만큼 부각되다보니 다른 캐릭터들이 뒷전으로 밀리는건 필연적이다. 더군다나 <밑바닥에서>는 캐릭터들이 사건 안에서 한꺼번에 얽혀드는 게 아니라 한 두 사람씩 순차적이고 개별적으로 기-승-전-결을 경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기 일이 아니면 무대에 등장할 일도 없어져버리고 만다. 물론 이 작품에서의 캐릭터들은 각자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비중의 적고 많음을 떠나 관객에게 각각의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과 관객이 그에 몰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스짜가 그렇게 '아깝게 묻혀지는' 대표적인 예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의 여주인공 마슬로바가 묘사되는 바로도 잘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성매매는 그정당성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열악한 여성의 지위와 그를 이용해먹는 주류 사회의 비틀어진 욕망을 고루 드러낼 수 있는 설정이다. 게다가 나스짜는 이 작품 자체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외모를 지녔고, 춤을 많이 추며, 무대 동선이 넓은 만큼 그 쇼적인 면모를 통해 내러티브의 단조로움을 보완할 능력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초반 이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싸친(박윤희)과 조프(강일생)로 대표되는 밑바닥 인생들에게 비웃음을 '상징적으로' 던질뿐, 거의 극의 테두리 쯤에머무를 수 밖에 없게 된다. 알콜중독으로 비척비척대기만하던 '배우'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깨달았다면서 #내 이름은 악토르,시베르치코브 바실리사스카 라고 목소리를 쩌렁쩌렁 울려가며 노래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개가 아니라 각자의 사건들을 산발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배우의 이야기도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다음 사건을 위해 '넘어가야' 한다. 결국 관객은 10명의 10가지 이야기를 접하지만, 뒤집어보면그만큼 캐릭터 자체의 처지에는 깊이 몰입할 여지 없이 빨리 빨리 넘겨야 한다는 뜻도 된다.

고리키의 원작 연극<밑바닥>을 감상하는 러시아인 관객의 입장에서는 굳이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캐릭터의 깊이를 가늠할만한 배경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공간이 다른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접하는 각색 뮤지컬<밑바닥에서>는, 그 구조적인 한계로 인하여 원작에 깃들어있었을 사회성이나 비판 의식(고리키는 사회주의자였다)을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물론 <밑바닥에서>는 소위 말하는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차를 거듭하며 극장에 올려질 수 있을 정도의 안정적인 관객 동원에 성공한 작품이다. 작품 자체가 가지는 톤이 최근 창작뮤지컬들의 코미디 위주 트렌드와 비교해 차별성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색깔이 분명한 캐릭터들과 사건이 연속적으로 제시된다는 점 만으로도 일반 관객 - 특히, 몇 해 동안 공연 한 두 편 볼까 말까 할 정도인 비非매니아적 관객 - 입장에서는 적어도 작품 자체가 밍밍하게 느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이를 논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국의 열악한 공연 풍토나 러시아 문화와의 이질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 스스로의 구조적인 한계로부터 비롯되고만다. 새삼, 뮤지컬의 완성도에 있어서 트리트먼트(대사와 노래를 합쳐가며 최종 대본을 만드는 뮤지컬의 프리프로덕션과정)가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하게 된다.


 


PS - 초반부, 타냐가 외출한 직후 싸친 일행이 선술집으로 들어오며 신나게 불러제끼는 러시아어 노래는 '카츄샤' 라는 민요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리랑 정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민요죠. 또한 극중 인물들은 정식 이름이 아닌 애칭으로 불리는데, 러시아어는 웬만큼 친분 있다 싶은 사이라면 이렇게 이름을 줄인 애칭을 부른다고 하죠. 타냐는 타찌아나, 나타샤는 나탈리야가 본래 이름입니다.




(이 글은 2007년 4월 22일~23일 네이버 '블로그 라이브' 코너에 소개되었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다정스페이스에 있습니다.

다른 웹사이트에는 글을 퍼가지 말고 글 주소를 링크시켜주세요.

또한 프리젠테이션, 레포트, 기사 작성 등의 용도로 인용할 때는

가급적 댓글이나 방명록을 통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무단 도용, 불펌, 표절,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인용 및 기타 저작권 침해를 절대 금지합니다.

  1. 가영씨 2007/04/22 02:16 답글수정삭제

    저는 정겨운씨가 할때 ?f지요- 참 재미있겠봤던걸로 기억나요
    그 상황에 따른 설정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엇어요, 슬펐지요.
    나타샤의 블라디보스톡의봄도 참 좋았구요

  2. 눈부신쥰 2007/04/22 09:52 답글수정삭제

    어제 이 공연을 보고왔습니다... 우연히 블로그 메인을 보고 방문하게 되었네요.. 소중한 리뷰.. 담아가겠습니다...^-^

  3. 죠커 2007/04/22 10:14 답글수정삭제

    밑바닥에서 음악 만드신 분이 제 과외 선생님인데 :D

  4. 마사에 2007/04/22 12:03 답글수정삭제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보러 갔었어요!!대학로까지 친구들하고 헤메면서 가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그리구 저희가 봤을 때는 남자배우분이 조승우 닮았을 때여서요.애들이 완전 열광했었답니다!!

  5. 노아 2007/04/22 12:59 답글수정삭제

    저희도 연말에 학교에서 단체로 보러갔었는데 이 뮤지컬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깊은 여운이 남더군요.
    다시 보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6. 사비류 2007/04/22 17:24 답글수정삭제

    저는 1기때 두 번 봤었는데^^; 또 보러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연극적 요소가 강하기는 하지만 노래도 상당히 좋았는데요. 하지만 나타샤가 그런 역이었다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저도 그저 발랄한 아가씨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확실히 그런 부분은 표현이 잘 안 된 것 같네요.

  7. 꼬선생 2007/04/22 21:50 답글수정삭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업어다놓고 찬찬히 읽어본다음 꼭 보러가려고 합니다 ^^

  8. dajung 2008/09/10 10:31 답글수정삭제

    와우~ 메인에 소개되니까 조회수가 껑충! 뛰었네요. 꽁꽁 숨어살던 다정스페이스를 찾아내서 블로그라이브에 올린 미스터블로그씨가 더 신기합니다^-^;;

    사실 공연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주가 된 이 리뷰로 메인에 오르는 게 좀 부담스러웠지만, 어쨌건간에 읽어주신 분들, 리플까지 남겨주신 분들 다 감사합니다. 모쪼록 연극이나 뮤지컬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받았으면 해요. 배우의 연기를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공연이라는 건 참 감동적이니까요.

  9. dajung 2008/09/10 10:31 답글수정삭제

    비판적이라기 보다는 짜장면을 먹고서 냉면이 아니라고 투덜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작품의 목적이 내러티브의 흥미로운 전개는 아니라고 생각 되고 (사실 상당한 구조적인 완성도와 흥미도 있지만) 그리고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되는 극 방식을 '틀렸다.' 라고 생각해서는 일차적으로 감상이 이루어 지지 못한다는 생각 입니다. 공연은 작품인데 누군가의 '그림 작품'을 보면서 이런 구도와 이런 색깔은 이래서 '옳지 않다.' 라고 접근 한다면 그건 감상은 아니지 않나요? 고리끼의 원작과 창작 뮤지컬 &밑바닥에서' 두가지를 다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 리뷰는 단지 작품의 포커스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만 느껴지네요.
    P.S. 까츄샤는 한국의 아리랑 격의 민요가 아닙니다. 2차대전을 전후해서 창작되어진 가곡작품이며 내용은 1차대전에 약혼자가 병사로 참전하게 된 한 여인이 그리운 마음을 노래에 실어 부른다는 내용입니다.
    핀트 안맞는 리뷰에 선입견을 갖고 공연을 보시거나 혹 보게 될 가능성을 손해보실 다른 분들을 위해 저의 의견을 적습니다.

    • dajung 2008/09/10 10:34 수정삭제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시절 '지나가다'라는 닉네임으로 다른 네티즌이 남기신 댓글이고,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블로그 이삿짐을 백업시켜서 옮기다보니 로그인하지 않고 댓글을 남긴 게 모두 제 이름으로 표시되는 에러가 나네요. (네이버 시절 필명을 한글로 '다정' 이라고 했는데, 댓글 에러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dajung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글 자체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10. 브릿 2007/05/03 10:35 답글수정삭제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퍼감니다~~

  11. 냥냥 2007/05/26 13:42 답글수정삭제

    ^^ 잘읽어보고 담아갑니다.공연감상레포트쓰는데 참고 하겠습니다.

  12. 냥냥 2007/05/26 13:43 답글수정삭제

    아- 그리고 비공개로 담아갑니다!

  13. dajung 2008/09/10 10:32 답글수정삭제

    저는 이 작품이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노래와 내러티브의 조합이 짜임새있지 못했다는 점을 중심으로 리뷰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카츄사를 아리랑격이라고 했던 것은 가사가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도로 러시아 사람들이 다 아는 대중적인 곡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카츄사는 1939년에 작곡되었지만, 대부분 민요라고 분류하고 있어서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14. 홍양 2007/11/29 23:02 답글수정삭제

    저도 노래가 내용과 상관없이 둥둥 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상당히 공감이 가네요~.. 그래도 '배우'가 노래할때는 완전 초몰입했었어요..감동!!ㅋ

트랙백 주소 :: http://dajungspace.com/46/trackback/
옵션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