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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이 무너지던 날 (2)


 


다정(http://dajungspace.com)




종례시간이 되었다. 화났을 때 담임이 어떻게 나오는 지 잘 아는 나와 내 친구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대충 예상을 하고, 절대로 조용히 하고 있어야 한다고 서로에게 말했다. 앞문이 열렸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반 아이들 모두의 표정은 굳었다. 이경숙 선생님이 교실을 박차고 나가게 만들었던 남자아이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담임 손에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교사 수첩과 회초리 대신 쓰는 죽비가 들려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교탁에 내려놓고나서, 드디어 담임은 그들을 불렀다.


"박성준, 오재혁, 김세훈. 나와라."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아까 국어 시간과는 완전히 딴 판으로, 아이들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교실 앞으로 걸어나왔다. 하지만 죄책감이나 잘못을 비는 표정을 지은 아이는 없었다.


"안경 벗어라."


그리고, 담임은 드디어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을 하는데. 방해를 하고. 선생님들 말이, 말, 같지가, 않아?!"


담임은 손을 들어서, 재혁이의 뺨을 때렸다. 아니다. 때린 게 아니라 '후려갈긴다'는 말을 저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껄렁껄렁하게 서 있던 재혁이는 그대로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가, 앞문께까지 가서 쓰러졌다. 키도 제법 큰 아이가 저만치 나가떨어질 정도로 그렇게 담임은 힘을 실어서 때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준이와 세훈이도 연달아 후려갈긴 다음 소리쳤다.


"일어나라."


그리고, 아이들은 아까와 똑같이 한 대 씩 더 맞기 시작했다.


교실 앞쪽에 앉아있던 나는 이 모든 광경을 똑똑히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0센티미터 자로 손바닥 맞는 걸 겪어도 보고 숱하게 아이들이 체벌받는 걸 지켜봐왔던 나인데도, 그래서 웬만한 체벌은 무덤덤하게 넘겨볼 수 있었다고 자부했는데도, 이날 만큼은 보는 내가 부들부들 떨리고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가끔 부모님이 집안에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울 때, 부모님이 치고 받고 다투는 것도 아니고 이혼할 것도 아닌데도 단지 아빠가 엄마에게 화를 낸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곤 했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그 날, 학교에서 그런 기분을 똑같이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공포감보다 견딜 수 없던 건, 내게 들이닥친 혼란 때문이었다. 난 그 날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는데, 그건 누가 옳고 그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어른들이 알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들이 "우우우~" 하며 야유하던 그 장난 아닌 장난이, 내게는 그들의 '반란' 으로 들렸던 것이다. 나는 애당초부터 콧대높은 모범생이 될 수 없는, 쥐뿔도 잘난 것 없는 아이였다고 앞에서 이미 말했다. 그나마 학교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되어 있으니 은근히 다행으로 여기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 특히 아까의 성준이나 재혁이 같이 애당초부터 공부 쪽으로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이, 모든 수업 시간에 소외되면서 칭찬 받는 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때우는 그들에게는 달랐다. 학생들은 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지만, 개개인의 적성이 다른 이상 그건 불가능한 소리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결국 나같은 아이들이 중심이 된다면, 걔네들은 무시받는 형국이었다. 그래왔으니까 그 날 그들의 행동이 '이 교실에는 모범생, 우등생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아이도 산다. 언제까지 우리를 천덕꾸러기 취급 할 셈인가' 라는 분노처럼 들린거였다.

물론 오늘 그들은 분명히 잘못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나 역시 '일단은 선생님을 괴롭힌 너희들이 잘못이었다'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생에 있어서 한 번도 의미있는 공간이 되어 본 적이 없었을 학교라는 곳에서, 오늘 그 아이들의 잘못을 비난만 하기에는 뭔가가 많이 불공평한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 담임이 잘못한걸까. 그것도 아닐것이다. 몇십명의 아이들을 통솔해가며 한 해를 무사히 마쳐야 하는 게 교사의 의무이고, 아마 (그 당시의 그 순간이라면) 나라도 저렇게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패는 게, 오히려 그 혼나는 아이들을 바로잡기 위한 거라고 많은 이들은 내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어디서부턴가 어긋난 건지 모르겠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다. 분명히 아이들을 올바로 크게 한다고 내리는 벌인데, 그 순간 사람이 사람의 몸에 고통을 가한다는 것, 특히 담임이 아이들의 뺨을 올려붙이던 순간의 그 살기 어린 눈빛이 도저히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왜, 그들은 학생부 교사나 다른 무서운 남자선생님들 앞에서는 저렇게 고분고분하면서 여자 선생님들 시간에는 만만하게 여기고 개기는 걸까. 그리고 저렇게 맞고나서 다시 잠잠해지는 건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앞에 강한 동갑내기들을 보며 나는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경숙 선생님, 우리 담임, 성준이 등등 모두가 살면서 마주쳐서는 안 될 사람들인데 어쩌다가 이 자리에서 맞닥뜨리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지나 모르겠었다.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잠들 때 까지 내내 생각했다. 도대체, 학교라는 곳을 왜 우리는 다녀야 하는 걸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에 가기 위해서, 라는거 말고 다른 이유를 알려줘......


이듬해 스승의 날에 다시 학교를 찾아갔다. 영어 선생님은 다시 유학을 갔고, 우리에게 생전 처음으로 새끼들이라고 욕했던 사회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담임을 만났다. 여전히 화났을때만 무섭지 평소에는 그럭저럭 좋은 사람이었다. 교무실을 나오는 길에 남자애들과 마주쳤다. 놀랍게도, 공고에 들어갔다는 재혁이가 거기 있었다. 담임은 가장 먼저 반갑게 "그래 재혁이는 학교 생활 잘 하고 있고?" 라고 물었지만, 그는 못내 껄끄럽고 어색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서 가을쯤의 토요일엔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있는데, 신호등에 버스가 멈춘 틈에 차창 너머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혁이를 보았다. 주유를 마치고 다음 차의 운전자에게 '어서오세요' 라며 인사하던 그 아이의 얼굴에는 내가 학교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의 눈빛이 있었다.


야자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TV를 들어보니 <추적 60분>을 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이상하게 학교에서 많이 떠드는데, 그 전과는 달리 아예 수업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했다.어떤 중학교에 하루동안 CCTV를 설치해서 녹화된 수업시간을 보여주는데, 교사가 뭐라건 말건 돌아다니는 식으로 정도가 좀 더 심하다 뿐이지 작년 우리반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떠들지 말고, 차라리 자라" 는 말도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들이 자주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방송 이후로, 언론에서는 "교실 붕괴" 라는 말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동네를 벗어난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나름대로 공부 깨나 한다는 애들이 모인 곳인데, 막상 맞을 '건수'는 오히려 중학교 때에 비해 많았다. 지각하면 기합받고, 야간 자율(?) 학습을 튀면 혼났다. 물론 숙제를 안 하거나 떠들어도 (당연한 말이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도 떠들긴한다. 특히 우리 학년은 입학하고 1년 정도는 너무 심하게 떠드는 바람에 욕도 많이 먹었다.) 꾸지람을 들었다.애들을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상황도 많았지만, 아예 '벌' 의 하나로 거리낌없이 체벌이 사용되는 곳이었다. 물론, '맞아 죽지는' 않을 정도로.

그때도 나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예의바르게 대했다. 그러나 1년전 담임이 뺨을 때리는 걸 본 이후로, 나는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거나 자주 때리는 교사들을 마주치는 게 달갑지 않았다. 물론 스승의 날, 제일 먼저 재혁이의 안부를 묻던 담임의 마음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을 때리며 지도하든 말로 타이르든 그건 일단 교사의 권한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매를 들게 되는 그 험한 분위기 자체가 싫었다.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친구같고 온화한 젊은 선생님들을 마음이나 행동으로 더 따르게 된 건,내가 중학교 시절 먼저 만났던 그 여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동정심' 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내가 처음으로 느끼게 된 '일하는 여자들' 에 대한 연민이기도 했다.

나는 방금 선생님들을 '동정' 한다고 썼다. 아마 여기까지 내 이야기를 읽은 나이 많은 어른들은 어디서 열여섯살 짜리 고등학교 1학년 짜리가 선생님을 감히 '동정' 하느냐고 펄펄 뛸 것이고,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은 걸으로는 예의 바르던 아이가 속으로는 자신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또 좌절할 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이 그랬다. 나는 진심으로, 그 '친근한' 선생님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과 안쓰러움을 갖고 있었다. 사실, 교사가 학생을 혼낼 때 학생도 기분 나쁘겠지만 아침 댓바람부터 화를 내고 나오는 교사도 기분을 잡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가하면 아이들은 자기네를 때리지 않거나 크게 화를 못 내는 선생님들은 더 만만하게 여기는 성향이 없지 않아서, 마음놓고 떠들거나 버릇없이 구는 적도 많았다. 그런 걸 다 참아 넘겨야 하는 선생님들이, 문득문득 불쌍하게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던, 그 '잘 때리는' 교사들 역시 항변한다고 들었다. 솔직히 우리가 '악역'을 맡아 하니까, 나머지 선생님들이라도 매를 들 일이 없이 학교가 이나마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충분히 일리있는 얘기였다. 한 반에 수십명씩 되는 다양한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선생님들도 지치겠지만, 저 교무실이라는 공간 안에는 또 얼마나 갖가지의 인간 군상들이 숨을 쉬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 여전히 누가 옳고 그른지는 판단유보였다. 아이들의 조롱에 견디지 못하고 나갔던 이경숙 선생님, 뺨을 후려갈기던 담임, 아침 7시 10분까지 못 왔다는 이유로 운동장 오리걸음을 시키던 학생부 선생님,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손찌검은 안하던 나의 고등학교 1,2,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들. 고 3 올라가서는 절대 재수하지 않으리라, 입시는 두 번 치를 짓이 못된다 싶어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공부했다.


내세울 것 없다고 스스로의 마음을 가두고 살던 내가, 국어 수업 시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글 쓰는 기쁨' 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나서 돌이켜본 나와 우리의 학창시절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경험담들도 수두룩했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잠자던 학생을 두발단속한다는 이유로 끌어내 가위를 휘두르며 '미래 없는 놈' 이라고 경멸했던 학생부 교사, 선배와 코치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맞아가며 훈련해야 하는 예체능 전공 학생들......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내 주위 친구들도 고3때가 좋았지, 하다가도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올리며 치를 떨곤 했다. 나 역시, 앞으로도 털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제발 좀 잊어버리고 살고 싶은 끔찍한 기억들이 이것 말고도 몇 개 더 있다. 그런 우리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초중고 12년동안 체벌을 받아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거였다. 난 또 하나의 비참한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속에서, 모두 학대받으며 자랐던 것이다. 성준이도 재혁이도, 맞아가며 살다가 반항하고 또 맞고 조용히 하는 과정을 거치며 여선생님들을 우습게 보게 된 것이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억지로 끊는 게 아니라, 애당초 생겨나지를 말아야 했다.

그렇다고 '체벌 교사' 모두를 차마 원망할 수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내가, 교사나 학생 개인이 혼자 맞서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학교의 구조를 똑똑히 겪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때려야만 말을 듣는 아이들이 어떻게 갓 담임이 된 새내기 교사의 잘못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에 이긴 사람들은 동료 교사들에게 착한 척 한다는 힐난도 감수해가며 끝끝내 매를 들지 않던 그 선생님들, 학생들이 때로는 버릇없이 굴고 만만하게 보더라도 감수했던 그 분들, 폭력은 쓰지 않지만 화가 났을때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던 그 분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중학교 3학년 때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교탁 앞에 선 선생님들의 됨됨이를 곰곰이 뜯어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이게 남들에게는 수업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처음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싫어서 매를 드는 선생님들을 피해 다녔고, 연민이 생기다보니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던 내가 어느 샌가 변해버린 것이다. 등교하면서 매일 마주치던 학생부 교사들이나, 몽둥이를 들고 야간자습을 감독하던 선생님들 앞에서 나는 잘못도 없이 일단 움츠러들곤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 앞에서는 차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냥 왠지 싫어서, 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체벌을 쓰지 않는 듯한 선생님들은 달랐다. 함부로 우리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고, "얘들아, 이번 일은 선생님이 잘못한 것 같다.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고1때 담임선생님은, 수업 분위기가 잡히지 않으면 가장 떠드는 아이 한 명을 지목해서는 "재희야? 유재희~ 예쁜 재희? 선생님 봐야지~" 하면서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러다보니 수업의 흐름이 끊겨도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별로 짜증날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와 다른 학생들은 '무시받지 않는' 느낌이었고 그들에 대한 내 동정심도 어느새, 적어도 학교 다닐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 분들과 의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신뢰로 바뀌어갔던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이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한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니가 뭔데 때리지 말라고 하느냐, 라는 비난앞에서 '체벌하지 않는 선생님들은 확실히 다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내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나보다 훨씬 먼저 체벌의 폐해를 깨닫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졸업한 지 한참 지나고서 였지만.


아침에 집을 나설때 마주치던 등교 길의 중학생들, 그 뒷모습 속에는 지난 날의 나도 섞여있다. 가파른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고 터벅터벅 걷는 열다섯살의 내가, 이십대가 된 지금의 내게 묻는다. 그래서 학교를, 이런 학교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체벌이 왜 '벌' 이 되어서는 안되는 지 모른다. 그건 때리는 부모나 교사나, 맞는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교사와 학생 모두가 왜 '한 대도 맞지 않으면 안 되는지' 확실히 깨닫는다면 이 현실이 달라지리라 믿는다.

언젠가 이 글을 읽을 선생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해도 해도 안되어서 체벌할 수 밖에 없는 날은 분명 있지만 그게 매일 매일은 아니니까, 그 날이 아닌 다른 시간 동안만에라도 내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들이 체벌 대신 전해주고자 했던 가치들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나누어달라고. 체벌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 만큼은 꼭 인정해달라고. 물론 교사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깨 노력해야 겠지만, 언젠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변할거라는 것 만큼은 확신한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입시 지옥 사회를 경멸했으면서도 학교가 모든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공간이 되도록 바꿀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사회를 원망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분명하다. 내게 따뜻하게 대해 주신 그 분들 자체가 바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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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갖춘꽃 2007/04/22 22:12 답글수정삭제

    변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에 변하니깐 그리고 좋은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글 잘 읽고 갑리다.

  2. 해맑음 2007/08/21 14:58 답글수정삭제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힘들었던 시간들이 생각나네요. 자신의 경험을 통한 진지한 성찰인듯. 잘 읽었어요.

  3. 쁘마 2007/08/21 23:49 답글수정삭제

    잘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4. 하타 2008/05/16 01:16 답글수정삭제

    잘 읽고 갑니다. 저는 내일도 학교에 가야 하겠네요.

  5. 지나다가 2009/06/16 15:17 답글수정삭제

    많은 일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런정도의 순준일줄이야...적어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학교시절에 개겨봤고, 맞을 만큼 맞아봤습니다. 그져 30년정도의 세월을 사는동안 참 많은 선생갖지 않은 선생도 만나봤고, 종경할만한 선생님들도 만날 행운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글은 참 어이가없게 만드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선생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적어도 사회에서는 양아치들이나 할 행동을 한 것을 옹호하고 그것을 통하여 교단을 말할 수 있는지 참 어이가 없네요. 이런 시시껄렁한 글일줄 알았으며 읽지도 않았을 것을 참 시간이 아깝네요...

  6. 지나다가 2009/06/16 15:24 답글수정삭제

    한마디만 더하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만들어 갈때는 적어도 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학생이니까 선생이니까 이런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에서 너무 억지가 아닐까요? 나도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시간에 그 수업을 들어주는 정도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먼저 선생님들이 우리를 무시했다고 강변하지만 그런 시각이 왜생겼을까요? 먼저 내가 그 수업시간에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다하더라도 위의 재혁이라는 친구의 일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피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예가 없다면 짐승하고 모가 다른가요? 앞으로의 인생도 보지 않아도 뻔하죠...어떤 부류가 될지..그러나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인정을 받지 못해도 예의를 지킬줄 아는 친구들이 잘되는 것을 직접 본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정말이지 말도 않되는 주장이 참 어이 없을 뿐입니다.

    • dajung 2009/06/17 07:47 수정삭제

      지나가다님께서 제 글을 끝까지 읽지 않으신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더군다나 1,2편으로 나뉘었는데.)
      이 글 본문에서도 저는 분명히 '재혁이의 행동이 잘못되었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았고,저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들과 학생들에 대해 모두 연민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그러니 '무책임하게 떠들고 교사를 우습게 보는 아이들' 에 좌절해서 학교를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선생님들을 안쓰러워 했던 것이고, 그러면서도 과도한 체벌을 썼다고 생각되는 선생님들에게는 '이해는 하지만,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이 물고 물리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시스템 전체가 변해야 하구요.
      물론 이런 해명에도 납득가지 않으신다면 뭐 어찌할 바 없지만, 제가 현직 교사분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는 건 무척 억울한 평가랍니다. 이에 공감하셨기 때문에 앞에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도 '잘 읽고 갑니다' 내지는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니 언젠간 변할 것이다' 라고 말씀해주신 거겠죠. 제가 아는 교사분도, 그리고 진작에 이 글(은 2007년에 올린 것입니다)을 검색해서 읽었을 다른 네티즌들도 그래서 별다른 항의나 불평을 하지 않으셨구요.

      PS - 그런데 사실, 그 이듬해 스승의 날에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뜻밖에 재혁이를 비롯한 말썽꾸러기들(?)도 일행으로 왔어요. 다른 친구들이랑. 선생님은 제일 먼저 재혁이의 안부를 묻고, 그들이 찾아온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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