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체벌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아이를 버릇없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근대 교육에서 체벌이 수행했던 역할을 보면, 어쩌다 한국의 학교들이 교문 앞에서 두들겨 맞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게 될거야.


 


체벌 - 교육을 빙자한 폭력의 최면술

     (3) 체벌은 전통이 아니라 악습입니다 


다정(http://dajungspace.com)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그림 본 적 있지? 알다시피 김홍도의 <서당> 이야. 여길 보면 아이가 훈장님에게 종아리를 맞고 울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학생에 대한 체벌이 조선 시대에도 일상처럼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을 예로 들며 체벌은 나름의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고, 조상님의 지혜라는 발언도 서슴치 않아. 대다수 사람들이 또 그렇기 믿고 있기에,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체벌은 '존속이냐 폐지냐'가 아니라 '체벌의 장점과 단점'식의 논쟁거리가 되었단다. 동전처럼 양면의 효과가 있는 이 교육방법을 어떻게 잘 쓸 것이냐? 라고 말이야. 물론 이때는 체벌이 좋건 싫건 일단 나름의 효과가 있으며 학교에서 당연히 써먹을 수 있는 지도 방법이라는 통념에서 출발을 하는거지.


 

그런데 이 시대가 지금과 천양지차라는 데서 결정적인 맹점이 나오는거야. 조선시대는 신분과 나이에 따라 개인의 인생이 틀에 박혀서 양반은 평생 부자로, 상민은 가난뱅이로, 노비는 거의 인간으로도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위계질서가 잡힌 사회였잖아.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각자 침해받아서는 안되는 인권을 가진다는, 근대 자유주의 사조가 전혀 없었던 사회였다는 거지(물론 후에 동학농민운동 등의 고무적인 신분제 철폐 움직임이 일어나고 대한제국이 노비제도도 없애긴 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신분제 질서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았음은 여러 대하소설들을 봐도 알 수 있어). 게다가 워낙 유교적 질서가 확고했던 이 당시는 아이들이나 청소년에게도 어른과 동등한 인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선 발상 이었을거야. 오죽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방정환 선생이 천대받던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서 '어린이' 라는 말까지 만들어냈겠냐구. 이 당시 체벌은 역시 아이를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그나마 지금보다도 훨씬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가한 것이었단다.

물론 조선 시대가 손아랫사람을 무지막지하게만 다룬 건 아니었을거야. 지금의 청소년기인 만 13~18세 정도는, 그 때 기준엔 벌써 다 커서 이미 혼인까지 할시기니까. 서당을 마치고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하기도 하고.뭐 어머니가 다 큰 아들 종아리 때리는 일이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일단 성인으로 대우받는 시점에서 공교육기관이 대대적으로 체벌을 장려하진 않았겠지? 워낙에 스승을 깍듯이 받들어 모시는 풍조였으니 사실 체벌이 필요한 순간(?) 은 지금보다 훨씬 드물었을수도 있겠고. 하긴누구나 의무적으로 중학교까지는 진학해야하는 오늘날의 대중 교육 시대도 아니었으니, 체벌을 당하는 학생은 둘째치고라도 학생이라는 직위 자체부터가 귀족적으로 들렸을테지.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의 학교에 회초리 바람이 휘몰아쳤느냐? 바로 일제 시대부터, 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대한제국 정부의 신분제, 연좌제 폐지 등으로 인권 의식이 싹 틀 기미가 보이기는 했지만 곧 일제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드디어 서양식(정확히 말하면 일본식) 근대교육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등교하고,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고 때론 시험도 치고 하는 일과가 시작된거야. 이때부터 평민의 자식도 학비만 있으면 학교를 간다, 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는데... 이 '멋진 신세계' 같은 학교가 말야.

초등학교의 옛이름이 일제하 황국 신민을 기른다는 의미의 '국민학교' 였던 걸 떠올려봐. 일본이 한국에 교육기관을 세운 목적은 (물론 소수의 민족사학도 있었지만, 심한 탄압을 받았지) 궁극적으로 '일본인의 말을 잘 듣는 한국인' 의 양성이었어. 그렇기에 국내 한국인의 교육은 단순 사무직이나 기술직으로 국한되는 초등기관까지로 한정한데다, 막상 더 공부를 해 보려는 지식인들도 비교적 가깝고 말(일본어)이 잘 통하는 선진국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친일 인사로 변모한 것이 아니니. 목적이 이렇다보니 어땠겠어, 교실 분위기가?

국사 공부 하면서 외웠던 거 있지. 일제 초기(1910년대)에 교사가 수업할때 칼을 차고 제복을 입게했다는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어이 없네' 라고만 하고 무심히 넘어가는데, 좀 더 실감나게 생각을 해 봐. 넌 못사는 나라 식민지의 열살도 안 된 조선 아이이고, 책보 들고 부모님이랑 헤어져서 학교라는 델 갔어. 근데 선생이라는 잘 사는(?) 나라 일본 사람이 군복 차림으로 들어와서는, "내 말 안 듣고 천황폐하에 개기는 것들은 다 각오들 해!" 라고 하며 일본도를 뽑아들고 허공에 휙 휘둘렀다고 해 봐. 등골에 소름이 돋지 않아? 모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복종하지 않는 기미가 보이면신변이 위험할 지경으로 몰고 가는 선생님(여기다 '님'자를 붙이긴 싫지만, 어쨌든)을 만난거라구. 교사는, 함부로 대항이라도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엄청난 권위자로 각인된 거지.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에다, 한국인들을 미개하게 보는 시선이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했을 리 있겠니? 당연히 체벌과 인격 모독이 행해졌겠지. 매를 쓰면서 몸을 지배하는 판에 자신의 '노예' 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건 생각할 수 없으니까. 사실 학교 안에서만 체벌이 일어나는것도 아니었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배우겠지만, '조선태형령' 이라는 악법이 있었어. 말 그대로 (일본인 지배층의 기준에서) 죄를 지은 조선인을 형틀에 묶어놓고 팍팍 곤장을 치는 거지. 억울하게 맞고 후유증에 시달린 조선사람, 정말 많았다고 하는구나.

당연히 한국사람들도 사람인데, 맞아서 기분 좋을 리가 없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때리는 일본인 교사' 과 '한국인을 탄압하는 순사' 는 치 떨리게 싫어했지만 잘못해서 '때리고 맞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회의를 하지 못한 거 같구나. 참 서글픈 얘기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에게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었다고 해. 그 옛날 삼국 시대에 한자며 불교며 전해준 게 누군데, 저 미개한 나라가 메이지 유신이란 걸 한 번 하고 나더니 순식간에 서양 세력과 맞붙는 무서운 존재로 거듭났잖아. 어쨌든 한국은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였고, 일본 사람들이 들여오는 신기한 생산물과 서양 학문들을 접한 뒤에는일본을 '정말 싫지만 선진국인 건 사실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지. 식민지 일본어 교육 덕택에 말도 잘 통하고 가깝겠다 해서 일본으로 떠난 유학생들은 아예 본토에서 선진국(?) 물을 먹고 와서는 일제에 대한 비판 능력을 상실한거야 (상당수가 그래서 친일파로 변모했지) 일본 '쪽바리'가 '한국인'들을 때리는 것은 분노할 일이지만 미처 '우월한 윗사람' 이 '미숙한 아랫사람' 을 때리며 훈계한다는 데까지는 성찰하지 못한 거란다.


해방 후에도 한국전쟁과 정치 불안으로 한국인들은 전근대성을 반성할 기회를 얻지 못했어. 그리고나서 군사독재가 이어지자, 전국민 의무교육시대를 맞아 교실 안의 권위주의는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게 된단다.

박정희식 경제 개발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 뜬 급진적이고 군사적인 시스템 하의 고도성장 전략이었어. 이러다보니 산업화를 위한 고학력자의 대량 생산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위하여 주입식 교육을 도입했고, 부족한 재원으로 인해 교사 1인당 60여명을 지도해야 하면서부터 대규모 인원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의 ‘권력'이 유지되어야 했지. 꽉 짜여진 학사 일정대로 재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체제가 유지되어야 자신의 밥줄을 유지할 수 있는 교사의 입장으로서는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똑같은 교과서를 보게 하려면 억지로라도 수업을 듣게 해야하잖아.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일탈 학생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체벌과 군기 잡기 이상으로 효과적인 수단이 없었다는 거지.

즉, 공부가 적성에도 안맞고 학교에 있어봤자 도무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선생님이 감시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던 거야. 오히려 눈치 봐가면서 억지로 책상 앞에 앉은 그 모습들이교사의 눈에는 일사불란 하고 질서정연하게, 면학 분위기(?)가 잡혔다고 느낀거지. '산업역군을 만들기 위한 학생 통제의 필요성'에다가 일제때부터 꾸준히 자행된 '체벌의 전통' 은, 이렇게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행청소년' 과 '열등생' 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처벌수단으로 '육체적 고통'의 유발이 최고라는 것을 퍼뜨렸단다. 물론 본인의 자녀가 학교에서 '맞고 온다' 는 것을 학부모들이 왜 몰랐겠어. 그러나 역시 체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서 성장한 부모로서는 '선생님이 아이 잘 되라고 매를 드시는 것' 에 오히려 감사해하기도 하며, 자식이 '일탈' 하지 않고 공부를 잘 해 대학을 가서 출세하고 빈곤에서 벗어나기를 꿈꿨어. 실제로 대학을 가야 고학력자가 되어 고임금을 받을 수 있던 초고속 경제성장의 시대, 유신의 시대는 이런 가정을 '모범적' 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권장했으며 학생의 '인권'은 아예 개념조차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지.


 

이 '맞고 때리는 습관' 이 군대를 거치고, 가정을 거치고, 다시 대를 이어오면서 체벌이란 게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거야. 심지어 학생들로만 구성된 동아리에서도 이 "군기 잡기" 문화가 파고들어서 선배와 후배의 계급(?)과 체벌, 강제로 술 먹이는 전통(?)들 마저 생기게 된거구. 한편 때리는 게 점점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학교에서는 엉뚱하게 '사람은 맞으면서 커야 버릇이 들어.' '교직 생활 30년을 돌아보건대, 역시 다스리는덴 매가 최고더라!' 는 말들도 나오게 된거지. 예전에 맞아가면서까지 공부하고 출세해서 배고픔을 면하려는 눈물겨운 극빈국 시절는 이미 지났고, 비판을 하건 옹호를 하건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거라 치자. 그런데, 비록 OECD국가 상위권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어도 "인간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는,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을 깨뜨리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사회시스템을 함께 개혁하지 못한 데에 대한민국의 비극이 있는 거란다. 오히려 체벌이 '아이 버릇들이는 데 최고' 라는 맹신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동안 유니세프등의 국제인권단체들이 줄기차게 체벌의 폐지를 요구한 것도 '체벌은 동양의 전통' 이라면서 깔끔하게 무시한게지. 사실 서양에서도 체벌의 역사가 있긴 있잖아. 그런데 그들이 왜 체벌을 없앴겠니? 우리보다 먼저 인권의식이 신장되어서 그런거 아니겠어.

90년대 들어 제작된 '학창시절'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들 -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아홉살 인생> <비트> - 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체벌 장면이 여과없이 담겨져 있다는 거야. 과거 70년대의 학창시절이 요즘 심심찮게 재현되는데, 그 중 빠지지 않는 장면이 바로 남자 교사가 남학생(주로 남자고등학교)을 체벌하는 장면이고. 감독들은 이를 통해 본인들이 얼마나 한 맺한 나날을 보냈었는지 절규하고 있어. 교사는 남학생들의 뺨을 마구 때리며 아버지의 직업을 들먹이는데 실제 한 아이(준석)의 아버지가 건달이라는 것을 다른 학생이 말해서 알게되자, 궁지에 몰린 교사는 오히려 '선생님 실수하신겁니더' 라는 말을 꼬투리삼아 아이를 정말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친구>) 역시 심한 체벌을 견디다 못한 현수(권상우)가 교사의 팔을 잡고 반항하자 현수와 우식(이정진)을 캐비넷에 넣고 군화발로 사정없이 '깐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슷한 시기 초등학생이던 여민이(김석)도 담임선생님에게 출석부로 맞고, 뺨을 맞아 쓰러져. (<아홉살 인생>)교사와 학생 사이의 정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이 상황은 안타깝게도 90년대로 이어져 민(정우성)은 교사의 체벌에 분노하여 유리창을 쇠파이프로 마구박살내지 ("비트") 물론 이들 모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수 있는 불량스럽거나 폭력적인 행동으로 '잘못' 을 저지르기는 했어. 그런데 이들을 교화시키려(...고 한다기보다는 이런 문제아들이 더이상 '문제' 를 일으키지 않도록 억제하는)는 방법 역시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었지. 교사들은, 그저 이들을 '문제아' 라고, 뭐에다 써먹을 놈들이냐고 낙인찍으며 하찮은 존재로 대할 뿐 이들의 고민이나 아픔을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그러기는커녕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을 역시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황당한 지도법이 계속되었지. 폭력에 물든 사람을 바로잡으려면 일단 거기서 멀어지게 해야 하는데......이게 비단 영화 안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왜 하나같이 우리의 '학교' 들은 암울하게만 묘사가 되는걸까. 체벌, 촌지, 성추행, 패싸움, 삥뜯기....

당연히 현실도 이랬고, 지금도 이러지. 우리 사회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중퇴자' 에 대해 두고두고 냉혹하게 대우하는 곳이야. 반면에 교사는 (지금은 권위가 많이 추락했다지만) 예로부터 스승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할 만큼 떠받들려 졌으며, 웬만해서는 해고는 커녕 징계를 당하지도 않고, 내가 학생을 때리건 꼬집건 욕을 하건간에 학생은 나에게 꼼짝도 못하는거야.반면에 학생이 교사의 부당함이나 폭력성에 문제를 제기하려 하면 '니가 잘못을 했으니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 아니냐' 라는 따가운 눈초리들을 감수해야 하고, 학교 밖으로 쫓겨나면 인생도 끝인 것 같은 상황이야. 자,이제 학생을 갈 데 까지 만만하게 본 폭력 교사들은 온갖 체벌과 비인격적 대우, 심지어 성폭력도 서슴치 않게 된다. '웬만큼해서는 말을 안들어' 라는 그럴듯한 핑계와 함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저런 궤변에 말려들지말자. 너희가 '사소한 체벌' 도 중히 여기고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의 말이 정당한지 부당한지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해야 하는게 맞는거야. 학생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시는 선생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 거라구.


 


어느 체육 교사는 체벌로 열중 쉬어 자세를 취하라 하고 남자아이의 성기를 만진다. 만지다가 '어~만지니까 커지네~' 이렇게 떠든다. 그걸 듣고 있던 우리 학우들은 뒤로 발랑 까져서 까르르댄다. 직원(다정 주: 여기서는 교사를 재단에 맹종하는 직원으로 지칭함)은 그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직원은 교문 앞에서 한 학생을 팬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서너 차례 따귀를 때려 코피가 나게 한 것을 20년간 쌓은 내공의 힘에 의해서인 것 마냥....피해 학생이 '악! 고막' 이렇게 말하면 '고막 터지면 내가 수술비 줄게' 하고 싸대기를 5~6차례 올려붙인 것을 훈장으로 여긴다.


 

한 통신 동호회에 고등학생이 올린 글 - <포르노, All Boys Do It!> 엄기호 ,123쪽

 



영어교사의 체벌은 상당히 독특했는데, 매를 들지 않고 손으로 꼬집기를 즐겼다. 꼬집는 부위가 다양해지면서 주로 '학생들의 성감대만을' 찾아가며 꼬집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목덜미, 다음에는 귀, 그리고 사타구니 안쪽의 허벅지를 돌아가면서 건드렸다. 그 다음 해에는 아예 학생 아랫도리를 벗겨서 맨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선생님은 학생이 극도로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 만족스럽다는 듯이 체벌을 멈춘다는 것이다. 이 영어교사는 학생들에게 변태, 새디스트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학생들이 이 선생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저런 체벌이끝난 후에는 간간이 음담패설을 곁들여 학생들의 웃음을 끌어냈는데, 성적인 농담으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교사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시키면서 이러한 행동을 지속했다. 학년말쯤에는 학생들도 이 선생의 성적인 체벌을 함께 즐기면서 체벌 당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즐기기 위해 학생의 얼굴에 집중을 하고 이에 교사는 힘을 얻어 학생들을 위해 쇼맨십까지 곁들여가면서 체벌을 한다.(대학생 남성 D)


"몸으로 때우기와 재미있는 체벌은 서로 보완작용을 하여 체벌에 대한 반감을 사라지게 한다(홍철기, 1997 : 257)" 는 고등학생의 말처럼, 성애화된 폭력은 성적인 것이 내포하는 재미와 쾌락성 때문에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성적 체벌은 교육과 훈육이라는 교사의 고유한 기능을 집단주의적 성적 쾌락으로 전환시킨 '폭력' 이다. 남학생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보다는 권력이 개입된 성적 폭력이 어떠한 쾌감을 주는 지를 알아가게 된다. 성적 체벌은 남성 집단의 내적 결속력을 위해 성적인 폭력이 쾌락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과정이며, 대학의 조인트 엠티, 군대와 같은 남성 중심적조직체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남학생들은 모욕과 불쾌감을 느끼다가도 집단주의적 쾌락을 내재화하게 되면서 체벌의 폭력성을 공론화 시키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런 일을 '고발'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이해되면서, 폭력성과 성적인 것이 결합되는 성적 체벌이 유지되고 있다. 


<오늘, 청소년의 성을 읽다> 손승영외 5인 공저 - 김현미, 청소년기와 섹슈얼리티, 61쪽

  




"여자애들은 한 번 때리면 하루 종일 풀이 죽어 있는데, 남자애들은 금방 또 헤헤 거리고 밝게 지내더라" 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 때문에 일반적으로 남학생들이 더 세게, 자주, 가혹하게 체벌을 겪지. "한 학기만 지나면 출석부를 갈아야 해요, 그걸로 하도 머리를 때려서 겉표지가 너덜너덜 하거든요" 란 말이 나올 지경으로, 어쩜 그렇게 허구 헌날 맞는지 참. 물론 여학생들이 그렇다고 편히 지내는 건 절대 아냐. 여중 여고에서도 체벌은 당연히(?) 있고, 여학생을 향한 학교 안팎에서의 성폭력(강간 뿐 아니라 일상 속 성희롱과 성추행, 각종 성차별)은 또얼마나 자주, 빈번히 일어나는데. 그 사례들을 몇 개 볼까?




학교는 성이 차단된 무성적인 공간이기는 커녕 성에 대한 킥킥거림으로 꽉 차있는 '음탕한' 공간이다. 쉬는 시간만 해도 아이들끼리 몰려서 포르노 잡지를 보고, 포르노 테이프를 돌리고, 경험한 친구의 무용담을 듣고, 음담패설을 지껄이고, 자기네들끼리 성행위 흉내를 낸다. 무더운 여름 보충수업을 할 때나 점심 먹고 난 5교시, 한창 졸린 시간에는 교사가 나서서 성에 대해 시시거거린다.


대부분의 남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이 공개적인 시시덕거림은 여성에 대한 비하로 가득한, 성을 자극-반응으로만 간주하는 포르노의 이데올로기에 닿아있는 것들이다. 심지어는 '바늘이 밑에서 흔드는데 어떻게 실을 꿰냐?'는 식으로 강간을 정당화 하는 말까지 낄낄거리면서 한다. 공식적으로는 근엄한 목소리로 '성이란 사랑과 합치되어야 하는 것이도, 생명을 탄생시키는 거룩한 것' 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강간까지도 바로 '신성한' 욕망의 배설로 정당화 된다. 교단에서.



<포르노, All Boys Do It!>엄기호,125쪽

 


우리 학교에 j모 선생이라고 있는데 그사람은 일단 여자란 한 단계 하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래 글 읽고 충격받지 마세요, 실제로 우리가 학교에서 당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사람의 말말말1탄


"너네들 그거 아냐? 여자는 되게 편하게살아, 편하기보다는 덜 힘들지, 그 단적인 예가 뭔지 알아? (웃음) 바로 섹스할 때야... 남자만 올라타서 뒤지게 흔들지 여자는 가만 있음 장땡이거든?" 이런 애기를 하면서도 전혀 무안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기죠 이런 상황을... 선생 한 명이 35명을 성폭행하고 있는 이런 상황을...(학생 ㄷ) 

 


학생 체벌 사고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체벌은 변한 게 없지? 교육부가 언제 어떻게 때려라, 고 권장(?)해봤자 였고. 근본적으로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할 생각을 못하는 데다가 웬만큼 맞는 건 이제 이력이 난 학생을 대하는데 어떻게 점점 강도가 더 세지지 않을 수 있겠어. 심한 체벌이라는 건 그 '적당한' 체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란다. '몸' 에 대한 특유의 안전불감증과 학생 인권에 대한 무지함에서 출발하니까. 허벅지가 시퍼렇게 되다 못해 까맣게 살이 죽을 정도로 패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야. 물론 나도, 모든 선생님이 다 학생을 우습게 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알아. 하지만 저렇게 학생 인권이 짓밟히는 꼴을, 대한민국의 학교는 방조하고 있어. 아니 차라리 '체벌을 권하는 사회' 라고 해야 할까나.

......그럼 이제 어떡하냐고?

 

그러게.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크게세 부류로 나뉠거야. 체벌을 줄곧 찬성하면서 매가 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냐 니가 어디 한 번 학교 나가서 한 시간만 수업 해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니가 애들 대학 보내줄거야?' 라고 생각할거구, 체벌에 반대해 온 사람들은 이 글의 빈약한 논지를 잡아내기도 하겠지만^^;; 일단 신이 나겠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체벌이 싫기는 한데....당장 없애면 학교가 난장판이 될 거 같아서....'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내가 도대체 '대안' 으로 뭘 제시하나 궁금할거야. 결국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벼르고 있겠구나. "그래서 학교가 어떻게 변할 수 있다는건데?" 하고.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소파 방정환 - 1923년 최초의 어린이날을 제정한 뒤 어른에게 쓴 글 중)



-"(4) 학교의 중심에서 자율을 외치다" 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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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레파스 2004/10/17 20:47 답글수정삭제

    꼭 두세 번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군요...
    4편 기다리고 있습니다.

  2. 다정 2004/10/19 22:36 답글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근데 마지막글을 좀 고쳐서 써야 할 거 같은데 중간고사도 있고, 지금 허리를 다쳐서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거든요. 23일 토요일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3. 다정 2004/10/21 13:34 답글수정삭제

    토요일에 업뎃 하겠다고 해놓고 어제 후다닥 올렸어요 ;;;;;

  4. 마루 2006/02/07 11:00 답글수정삭제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퍼가도 될까요? ^ ^

  5. dajung 2008/09/12 19:58 답글수정삭제

    (네이버 블로그 시절, 2008년 4월 19일 "권위주의" 님이 남긴 댓글입니다.)

    교육을사칭한
    악덕권위주의는
    언젠가는학생들의
    분노를자극시키기에
    이른다!특히학생들이
    잘못을하면얼마나한다고
    그들을폭력으로휘어잡을
    생각을하다니?학교에는
    썩은선생들만 존재한다!

  6. 여교사 성희롱, 공교육의 추락

    Tracked from 심지를 굳게 하고 2009/09/13 02:37

    여교사 성희롱, 교권 추락 아닌 공교육의 추락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남학생이 여교사를 희롱하는 듯한 동영상이 퍼졌습니다. 여기에 가담한 한 학생이 찍은 동영상을 '선생님 꼬시기'라는 제목으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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