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를 피하는 방법

-교육 개혁, 늦더라도 제대로 가자-


 



다정( http://dajungspace.com)




참여 정부가 성공한 개혁 정책 중 하나로 EBS 수능방송을 꼽은 사실에, 많은 학생들이 코웃음을 쳤다고 들었습니다. 우격다짐격으로 시행된 범국민적 공과외 프로젝트(?)의 부실함으로인해 '하루하루 숨통이 조여온다' 던한 고3학생의 한겨레신문 기고글을 굳이 되새겨보지 않더라도, 사교육비를 막기 위해 국가가 직접 사교육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발상이 더이상 참신할 수 없다는 것은 아마 수험생뿐 아니라 교육 시장에 조금이라도 관계하는 사람이라면 다 깨달았겠지요. 그리고 학교나 학원 수업 시간에 입시 제도에 대한 설명을 귀기울여 들어본 학생들이라면 아마 다 알 겁니다. 정말로 EBS교재와 강의에서 문제가 '그대로' 나올까? 천만에요. 몇십만에 달하는 수험생들의 점수를 '한줄로' 세우려면, 게다가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쉬운 문제만 내서는 절대로 아니되는데, 어려운 문제를 적절히 섞어서 내야 등수가 예쁘게(?) 갈리는데, 이런 출제 원리를 아는 그 누가 순진하게 'EBS만 믿으면 된다' 고 큰소리 치겠습니까? 오히려, EBS교재에 나온 문제가 어떤 식으로 어렵게 '꼬일지' 에 대비하는 것이 대학 진학을 바라는 수험생들의 큰 고민거리이겠군요. 아무튼 저도 제 주위 수험생에게 이 말을 하고 싶군요, 고3들이여, 절대로 EBS에 의지하지 말지어다!




도대체, 언제부터 교육 개혁이 시급하다는 소리가 나왔고, 학교 현장을 둘러싼 문제들이 하나둘 씩 불거져나온게 몇 년 전인데 그래도 교육 개혁이 효과가 없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대답합니다. 정부에서 대입 제도를 아무리 뜯어 고치고 되붙여 봤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이죠. 그리고 의외로 또 많은 사람들이 체념합니다. 다들 대학가려고 발버둥치는 이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뭘 어떻게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마 없을거라구요. 하긴 상당히 일리있는 말입니다. 해방 후, 6.25 전쟁과 각종 쿠데타를 겪으며 정신과 육체가 모두 황폐화된 한국인들에게 생존은 너무나 절박한 문제였고, '잘 살기' 위해서는 대졸자가 되어야 했으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집념은 대학교를 '상아탑' 이라기보다 '우골탑' 으로 불리도록 했으니까요. 지금도 고졸자와 대졸자의 사회 처우가 현격히 다른 이 나라에서, 대학에 가야 살아남을수 있다는 진리(?)는 선입견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어마어마한 이데올로기이겠지요. 박노자씨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서문에서이 구절을 말하며 지금의 한국사회와 놀랄만큼 닮아있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좀 범위를 좁혀보면, 교육 현실과 너무나 일치하지 않나요? 대학을 가야만 성공할 있는 세상을 탓하면서도, 대학에 가서 성공하려고 하는(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학에 가야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불안감' 을 어떻게든 뿌리치려하는)이 이율배반적인 사고는 결국 '좌우지간 경쟁자를 이기고 보자' 는 살벌한 집념으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정부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한국인의 피에 흐르는 이 교육열은 없어지지 않을텐데, 뭘로 처방해도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는걸까요?



저는 여기에서, 한번 '발상의 전환' 을 보자는 제안을 교육 당국과 학생들,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 학생 중에서 이 말 안 듣고 자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어딜 그렇게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거야?' '학생의 의무는 공부다' 그런데 잠깐만요. 좀 더 뜻을 명확히 해 보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그 논리들이로군요. '모든 학생은 대학을 가야 한다-그러므로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그 점수 높은 '명문대' 라는 학교들의 대학 정원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학생들은 죽어라 경쟁해야 하고, 거기에서 낙오하거나 참여하지 않은 대다수의 '언저리 청소년' 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죠.물론 명문대의 진학 욕구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이렇게 입시열기'만' 후끈 달아오르는 와중에, 지금 한국의 학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비리를 저지르고 쫓겨난 이사장이 다시 당당히 자리를꿰어차고 앉아서 '청렴한 학교' 만들자고 반항한(!) 교사들을 내쫓고, 오늘도 많은 학교의 아침은 교문 앞 몽둥이 소리로 시작되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던 과학고와 외고에서는 '선생님, 전 그냥 의대 갈래요' 라는 말이 심심찮게 튀어나옵니다. 아이가 성질을 부려도 '고3 스트레스니까 넘어가야지 뭐' 하고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와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보다 피해가려고만 하고 있구요, '다같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수능 대박 나자' 던 친구들이지만 각자 눈치 보면서 내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초조해합니다. 온갖 다양한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들의 자질은 개개인과 상관없이 통째로 폄하되기 일쑤입니다.


정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사교육비를 잡기 위해 수능을 쉽게 낸다 어렵게 낸다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지만, 결국 수능이 쉽건 어렵건 간에 과외는 다들 한다로 결론이 이 마당에, 더이상 밑질 것도 없는 이 상황에서 한 번 방향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동안 '대학을 가기 위해서' 라는 명목 하에 밀려났던 가치들을 되살려 보는 것이 그렇게 말만 번지르르 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학생' 이라는 두 글자로 묶어두기에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들이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개성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도덕적 태도가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해봅시다. '쬐끄만 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해서 뭐 되려느냐, 그냥 대충 졸업해라' 라고 넘어갈게 아니라, 왜 고등학생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비리 사학의 퇴진을 외치는지 귀기울여 보세요. '너 공부는 안하고 게임질이니?' 라고 하기 전에, 자녀가 어느 방면으로 어떻게 문화적 소양을 쌓고 있는지 고민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많은 기성세대들은 공부를 잘한다, 똑똑하다는 것은 곧 교과서 중심의 학과 공부를 투철히 해서 성적이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마냥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학생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지식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 사설 100개를 스크랩하는 학생보다, 사설의 논조가 잘못되었음을 따끔하게 비판하는 학생이 더 돌머리(!)라는 소리를 그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수능 언어영역 모의고사에서 늘 만점을 받는 학생보다, 자신의 소설(외계어글 말고) 하나를 완전히 써 문학 소년 소녀가 더 국어를 못하는 것일까요? 일(또는 공부)와 놀이가 철저히 분리된 유년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아이들이 놀면 일단 걱정부터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삶의 지혜는 교과서 안에만 꽁꽁 묶여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하다못해 스타크래프트 게임속의 낭자한 선혈을 보고서도 '이렇게 잔인한 것을 즐기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라는 제법 거창한 철학적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네 생각은 어떠니? 라고, 부모나 선생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의도 없이 순수하게 물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얼마나 자주 그렇게 물으셨나요? 아이들이 여가 활동을 한다면, 좀 더 직선적으로 말해서 '논다면', 그걸 막을 게 아니라 얼마나 '잘' 놀고 있는지를 눈여겨 보십시오. 아이가 '생각 없이' 논다면, 무조건 공부 하라고 책상 앞에 끌어다 앉히기 전에 '생각 있게' 놀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 줘보세요. 너 맨날 게임만 하네? 근데 그것만 하지 말고 나가서 농구도 하고, 책도 읽고 싶은 것부터 좀 읽어보고 하지 그래? 넌 블로그에다가 글 안 쓰니? 하고요.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렇게 말할겁니다. 그렇게 '일탈' 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고요.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한 번 물꼬를 터 보면 어떨까요? 입시 부담이 적은 중학교에서부터라도 성적 좋은 아이와 성적 나쁜 아이를 갈라서 불합리하게 차별할 게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눈여겨 보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온갖 입시 제도의 변혁(?)을 위해 쏟아부었던 그 재원들을, 이제는 청소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투자해보는 거, 괜찮지 않나요?

저는 이해찬 국무총리 겸 전 교육부장관을 생각할 때마다, 어릴적 읽은 불교 설화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 마을에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안달 난 부자가 있었고, 그는 목수를 불러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근처로 이사온 다른 부자가 3층 집을 짓고 살자 본인도 지금의 1층집 대신 3층집을 가지고 싶어서 당장 목수를 부릅니다. 묵묵히 땅을 파기 시작한목수에게, 부자는 왜 갑자기 땅을 파느냐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3층 집을 지으려면 일단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 한다며 목수는 부자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난 1층, 2층도 필요없으니 3층부터 지어라' 고 길길이 날뛸 뿐입니다. 결국, 목수는 당신의 재주로 3층부터 지어보라며 부자를 떠납니다.

이해찬씨는 당시 교육부장관 취임사에서, 분명히 학교의 민주적 운영 등을 언급하며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이해찬 1세대' 라고 낙인 찍힌 전국의 83년생들의 원성이지요. 수행 평가, 특기 적성 등은 도저히 지금의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선진국형 제도였고, 어쩌다가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간다' 라는 말이 나와서 졸지에 대국민 사기극으로 까지 번질 정도였지요. 적정 난이도를 유지한다던 수능은, 2002년도 당시 급격한 난이도 변화로 그만큼 학생들의 성적이 혼란스럽게 나왔구요. 대학 갈 사람은 다 간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시험의 난이도나 운영 방식이 일관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를 대비하는 수험생들의 위험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교육계는 까맣게 잊었습니다. 아니, 무시했다고 보는 편이 옳겠군요. 이해찬씨가 어떤 다른 정책을 추진했건, 그는 가장 늦게 건드려야 하는 부분부터 손질을 하려 했습니다. 차라리 대입 제도를 그대로 존속하면서 청소년들의 활동을 지원해주고, 사립학교법 개정에나 힘썼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형편도 안 되는데 그 형편을 나아지게 하겠다고 허세를 부린 그 모습은, 안타깝게도 지난 국민의 정부의 초상화였습니다.


 

참여 정부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올 12월에 청소년들과 정부의 대규모 간담회가 있을 거라는데, 그 행사 한 번만 치뤄 놓고 청소년들의 정당한 요구는 또 '경제 논리' 에 밀려 멀리 멀리 모래사장마냥 씻겨나갈까 벌써부터 걱정이 듭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는 놀랄만큼 '정부 집중형' 입니다. 이만큼 교육청 눈치 많아 보고, 공문 많이 내려오는 데도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럼, 중앙에서 틀어쥔 권력을 대폭 놓아주든가, 부작용이 염려되어 그러지 못하겠다면 한 번, 입시열기를 '식히기' 에 급급하지 말고 아예 불을 줄여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어떨까요. 오늘따라 추상적인 말들이 많았군요. 아무튼 요지는 그것입니다. 이제 눈을 돌려보세요.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면 교육 문제들이 해결되리라는 희망은 이제,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입시 제도를 바꿀 돈으로, 사립학교법의 개정이나 청소년 인권 향상에 팔을 걷어 붙여 주길 부탁합니다. 이게 먼저입니다. 청소년의 일상이 행복해질때, 번듯한 직업으로 돈이나 많이 번다고 좋은 게 아니라 진짜 내 행복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될때, 공부 일변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보듬으며 살아가려 노력하기 시작할때, 그 때 입시 열기는 조금씩 꺾일 겁니다.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지기 힘들다면, 공교육에서 먼저 해 볼 수 있습니다. 당장 개별 학교에 부과되는 온갖 공문이나 규제만 줄여도, 이런 노력을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공부 일변도에 쓸려가는 바람에 잊혀졌던 삶의 가치들을 하나씩 복원해 나갈때, 이 나라 이 학교들은 비로소 숨통을 틔울 수 있습니다.


 

늦더라도 제대로 갑시다. '바꾸지 않고 왜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라는 한탄은 노래 가사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현실의 부당함을 절감하면서도 거기로 뛰어들어야 하는 서글프고 용기 없는 한국의 학생들을 당장 구조하기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데, 천천히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설마 IMF를 조기졸업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 뒤로 백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형국이 교육계에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버스 옆구리에 붙은 모 인터넷 수능 강의 사이트의 카피 ("65만을 위한 강의가 실력의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를 보고 우울한 어느날에, 조금은 정신 없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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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교육개혁
  1. 다정 2004/09/17 10:59 답글수정삭제

    .......참여정부의 삽질 정책이 이미 시작되었군요.

  2. dajung 2008/09/12 20:29 답글수정삭제

    (네이버 블로그시절, 2008년 4월 19일 '안티권위' 라는 아이디로 남겨진 댓글입니다.)

    교육NO!
    체벌NO!
    명령NO!
    어른NO!
    폭력NO!
    권위주의NO!

  3. 탈학교론, 지식 정보화 시대에 교육이 나아갈 길

    Tracked from HEAL THE WORLD 2010/01/11 01:01

    강의는 생각을 둔하게 하고, 잠재적 창의력을 파괴해. 따분한 수업과 교제에 시간을 썩히긴 싫어. 쓸데없는 지식을 외울 바엔, 세상 돌아가는 진리에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겠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길 만이, 나를 부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야. 아직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지만, 난 오래 참을 수 있어. 경쟁엔 언제나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야. 만일 내가 패자가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줄 방정식을 만든다면, 이런 저런 분쟁해결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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